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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st>

  • 작성자 사진: Gretes
    Gretes
  • 2023년 9월 5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3년 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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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tes


<Thirst>

by Park Chan-Wook

Thriller, Romance / Germany / 2023 / 133min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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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디 죄악에 잡아먹힌 것들은 속죄하고 나아가지 아니한다. 인간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과업을 돌아보는 것은 선한 변화에서 시작될 수 있는 것으로 진정한 죄인들은 향유할 수 없다. 그는 오만하여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지 않고,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으며 행동을 수정하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물웅덩이에 맺힌 물에 이끼가 끼고, 상하고, 썩으며, 땅에 흡수되지조차 못 해 구역질 나는 냄새를 풍기는 것 처럼… 마주하기만 해도 그 근원의 깊이가 어림 되어 가까이 둘 수조차 없는, 하나의 불경한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새까만 깊이에 신부 神父가 운명적으로 이끌림을 느낀 것은, 어쩌면 신의 계시가 아닐까. 스스로 참회하지 못해 구원받지 못하는 존재를 자기 자식으로 하여금 이끌며 교화시키라고. 하여 구원하며, 지옥이 아닌 천국의 문턱에 발을 내딛게……, ―잠깐. 그렇다면 되려 그 깊이에 잡아먹힌다면 어찌 되는 것이지?


 깜박.

 어두운 밤, 누군가의 집 앞에 센서 등이 밝게 들어온다. 곧이어 집안을 짧게 메우는 초인종 소리. 모두가 잠에 들 시간임에도 깔끔히 신부복을 차려입은 ―정확히는 햇빛을 피해 남들과 다른 시간을 살아가야만 하는― 남자가 인터폰 너머의 인영을 보고 짓 무거운 한숨을 쉰다. 집에 불이 켜져 있으므로 모르는 척은 할 수 없다. 집 앞에 있는 ‘것’이 벨을 울리는 일은 인간 흉내를 내기 위해 예의를 차리는 하나의 시늉일 뿐, 조금이라도 성질에 거슬린다면 문을 부수고 창문을 뜯어서라도 들어올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이어져야 할 행동은 하나로 정해져 있다.


 “―안녕.”

 분홍색 머리카락을 가진 그― 카밀라는 짧은 기다림조차 지루하다는 양 문간에 삐뚤게 기대서 신부, 얀 세르반테스를 눈으로 훑어본다.


 “……. 왜 찾아왔어? 잘 지내는 것 같던데”

 “보고 싶어져서?”

 “봤으니 됐겠어.”

 “들어가도 될까. 피가 좀 묻었거든, …….”


 그제야 시선이 내려간다. 인터폰에 잡히지 않는 위치의 손에는 30대 정도로 추정되는 남성의 시체가 대충 쥐어져 있다. 축 늘어진 몸은 방금까지는 온기가 남아있던 듯 하나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여 사망 시각을 정확히 가늠할 수 없다. 단지 대충 끌고 오느라 무릎이나 다리, 팔 따위에 흙과 생채기 따위가 빼곡할 뿐이다. 금방 죽였고, 입술이 붉게 번들거리는 것으로 보아 꽤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마쳤음을. 눈앞에 있는 인물과 상황만으로 앞뒤 상황을 판단한 얀 세르반테스는 눈을 얇게 찡그렸다. ‘그런 뒤처리가 필요한 나이는 아니잖아.’ 거절의 의사를 내비치나 카밀라는 여전히 웃는 낯짝으로 성큼 문 안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다. 팔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지만, 손끝을 그 옷자락 위에 예의 바르게 가져다 대고 꾸욱 밀면, 들여보내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카밀라 그레이스는 잘 알고 있었다. 얀 세르반테스 역시도 이 행동을 자신이 더 적극적으로 거절할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의 싸움은 언제나 승자가 정해진 제로섬 게임으로 종결된다. 서 있던 사람이 사라진 문 앞에 무언가가 남아있기라도 한 양 내려다보던 얀 세르반테스는 미간을 꾹 누르고 대문을 닫는다. 그다음 몸을 틀어 카밀라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선다.

 언젠가 그런 말을 본 일 있음을 상기한다. 악마는 초대가 없으면 문지방을 넘지 못해서, 늘 안에 있는 이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그것을 위해 교묘한 문장이나 단어를 고르거나 안에 있는 인간이 흔들릴 법한 외관을 준비해 매혹하려 한다고……. 분명히 카밀라와 얀은 같은 존재였으나 얀은 카밀라가 뱀파이어가 된 순간, 자신과는 성질이 다른, 무언가 끔찍하고, 어둡고, 괴로운, 아주 불경한 무언가가 되었음을 일찍이 직감하였다. 자신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되었기에 그를 멀리하였지만 그는 멀어지지 않았다. 끈적하게 붙은 그림자 마냥 그를 떠나지 않았다.

 외로워서? 흥미로우니까? 그 의중은 아직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 카밀라 그레이스가 몇 주, 몇 달을 예고 없이 자리 비우고 제가 좋을 때만 그의 집에 들락거리는 일도 사유를 가늠하거나 흔쾌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반해 카밀라 그레이스는 예상하는 것 보다 의도가 순수 純粹한 인물이다. 순수하다는 말은 통상 선하거나 상냥하다는 뜻이 아니라, 불순물 없는 본질 그대로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어떠한 하나의 목적성과 충족하고 만족하고자 하는 탐욕, 욕구, 내지 이기심으로 점철되었으며 무엇이든 금방 질렸다. 단지 ‘가지고 싶다’는 욕심을 부려 얀 세르반테스를 협박하고 겁탈하여 자신 역시 인간 상위의 존재가 되었고 몇십 년 쯤은 꽤 흔쾌했던 것 같다. 압도적인 강함과 압도적인 우월감에 취해 어린아이가 새로운 놀이를 배운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아주 잠시였다. 원래 그랬던 것 처럼 권태감이 들이닥치는 것은 금방이었으며 이어 생각하고 판단하길 그만둔다. 걸음이 닿는 곳으로 향하거나 먹고 싶은 걸 먹고,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는 단발적인 자아충족을 이어가며 연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하나의 순수 악이었으나 실상 외로웠다. 자기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사실이라 솔직히 뱉을 순 없었지만 얀 세르반테스의 곁에 있어야만 존재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가 무언가 바꿔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자신을 하룻밤 만에 인간 외의 것으로 만들어 준 것처럼, 자신을 계속 사랑하고 애정하여 인간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끈적한 그림자라도 된 것 마냥 그의 테두리를 서성였다.


 그렇게 서로가 닿지 않을 각자의 상념에 잡아먹혀 있었을 때 먼저 입을 연 것은 얀 세르반테스였다.


 “…분명 경고했잖아, 카밀라 그레이스. 유한한 시간을 소중히 하라고.”


 카밀라 그레이스는 거실에 시체를 대충 던져두고, 주방으로 들어가 끈적한 손을 대충 씻어내린다. 피를 씻어내는 일에 굳이 세면대를 택하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이 소소하게 불만스러운 양 얀 세르반테스의 눈가가 짧게 찡긋거리는 것을 옆눈으로 분명히 흘겼지만, 이미 뒤틀려있는 신부의 심기가 조금 더 틀어진다고 하든 말든, 그 런건 카밀라에게 그다지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 입꼬리나 비죽이며 끌어올려 ‘들었다’는 신호를 보내고, 손의 물기를 훌훌 털어낸 다음 긴 머리카락을 대충 한 손으로 쓸어올렸다. 흰 원피스 끝단을 손으로 짚으며 피가 어디 더 묻었나, 쉬이 닦아낼 수 있을까, 가늠했지만 등 쪽에 붉은 점처럼 튄 핏자국을 보고 버려야겠네, 작게 중얼거리며 거실로 돌아온다. 얀 세르반테스가 있는 곳으로 걸어 옮기며, 발치에 채인 시체는 예의 갖춰 넘지도 않고 발로 툭- 밀어 넘겼다. 종래 얀의 맞은 편에 나란히 서서 물기 남은 손을 느리게 끌어올려 어깨망토에 앞뒤로 툭, 툭, 문지르듯 닦아낸다. 그는 종교인에게 기본적인 예의 따위 갖추는 낯짝조차 가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조금 젖고 구겨진 망토 끝을 손가락으로 각을 잡아 정리하면서 카밀라 그레이스는 기억을 더듬는 듯 잠깐 조용하다가, 입을 열었다.


 “같이 잘까? 예전엔 그랬던 것 같은데.”

 “그냥 눈앞에서 꺼지라고, …내가 네게 너그러웠던 건 네가 인간이었어서야.”

 “그래서 인간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달란 소원을 들어줬고 ……”

 “―들어줄 수밖에 없게 만들었잖아. 그리고 그 인간은 죽었어. 죽으면… 끝이야. 그러니 너와 나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고, 네게 어울릴 이유도 의미도 없어.”

 “그럼, 이제부터 만들면 되는 거네?”


 의미 없는 공방이 이어진다. 결국 피곤함에 찌든 얀 세르반테스는, 찡그린 낯을 넓은 손으로 덮듯 누른다. ‘마음대로 해. 전부 해보고, 이만 꺼져…….’ 포기한 듯한 속삭임에 성질이 돋은 카밀라 그레이스가 순간 얀 세르반테스의 상체를 밀쳐 바닥에 엎는다. 옆에 있던 의자가 무너지고 위에 올라있던 화병이 거실에 조각을 수놓으며 깨졌다. 흘러나온 물기와 붉은색의 장미꽃잎이 천천히 두 사람의 곁으로 흐른다. 거실의 조명이 유리 조각들에 반사되어 아름답게도 반짝이는 사이에서 카밀라는 얀 세르반테스의 몸 위에 올라탔다. 이제는 짐승의 것으로 묘사해야만 하는 붉은 눈동자를 한참 들여다보면, 세로로 깊은 동공이 한없이 얇아진다. 무게로 짓눌러 내려다보는 시야에 손이 천천히 얀의 목가로 깊게 다가선다. 감각을 확인하려는 양 신부복의 원단을 더듬었다가, 쇄골에서 목선, 울대 근처까지 들어서고 두 손으로 상체를 실어 압박한다. 숨이 막히지만, 생경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얀 세르반테스는 미동 없다. 그 반응이 더욱 성질을 돋워 상체를 웅크리고, 당장에라도 목을 꺾을 듯 힘을 주고, …….


-


 달빛이 들어오는 창가로 흰 원피스가 바람에 가볍게 나부낀다. 틈새로 빛자락이 흔들리고,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얇고 얇게 휘날렸다. 숨이 끊어졌다가 다시 맞붙은 신부神父는 건조하게 고통을 호소하며 몇번째 일지 모르는 삶을 다시 시작한다. 들리지않는 음악 선율에 맞춰 창가에서 혼자만의 왈츠를 추던 카밀라가 인기척에 고개를 홱 돌린다.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웨딩마치에서 신부新婦가 환하게 웃는다.

 “―생일 축하해, 얀 세르반테스.”

 죄인을 찾는 공방은 선고 없이 끝났다. 살인자는 둘이고, 한 명은 반성의 의지가 없으며 한 명은 뻔뻔히 용서를 구할 낯짝이 없다. 이 밤하늘 아래 존재하는 괴이 모두가 신부이며, 죄인이다. ―생각과는 다르지? 처음에는 새로워도 결국엔 이 모든 게 질리는 날이 올 거야. 개미의 목숨을 짓누르듯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즐기고, 마시고, 연출하거나, 가끔은 세기에 길이 남을 연출가가 되고. 모든 게 마음대로 되니까 더 이상 하고 싶은 게 없어. 권력은 가진 순간이 끝이야. 인간은 간절하게 불타오르기에 아름다운 법인데 아무것도 즐겁지 않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게 돼. 넌 인간이 아니니까. 우리는 인간이 아니니까. 불멸은 불행이며 축복이 아니라 저주인 거야, 우리에게…….


-


 그러니, 좀 더 어울려 줄게. 네가 깨닫고 질리기 전까지는.

 결정했어. 끌어 내려 곁에 있게 할 거야. 네가 내뱉는 말과는 상관 없이.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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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
2023년 9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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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같은 최고의 작품... 2023 최고의 스릴러 로맨스...

저는 하루 3번 아침 점심 저녁마다 밥대신 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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