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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Wars>

  • 작성자 사진: Buzzer Beater
    Buzzer Beater
  • 2023년 9월 5일
  • 10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3년 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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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zzer Beater


<Star Wars>

by George Lucas

SF / Korea / 2023 / 133min / PG



오래 전 멀고 먼 은하계에…

전쟁, 시스 군주의 공격에 의해 공화국이 무너지고 있다.

악은 어디에나 존재하기에 영웅이 필요하다.

마침 제다이 사원에는 두 명의 아이가 들어온다.

선택받은 자The Chosen One와, 미래를 보는 자Visionary One.

우주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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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그 꿈이다.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고요한 사원의 침실에 어슴푸레한 새벽빛이 들어왔다. 나는 욱신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이미 여러번 봤던 꿈. 되짚어봐도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러나 이마의 보석에서 느껴지는 홧홧한 열기가 그 꿈이 예지몽임을 선명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딱 10분 뒤에 일어나자.’

 예지몽에 동반되는 두통은 익숙했다. 미래를 보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미래를 봤던 건 내가 태어났을 때였다. 불타는 건물과 파괴된 고향별의 풍경. 입을 열고 본 것에 대해 말했더니 미래를 보는 자Visionary One의 유산이라며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것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때는 몰랐던 사실이지만 나, 마이트레야 족은 종족 중 단 한 사람만이 미래를 볼 수 있으며, 그 능력은 죽음으로써 이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 전대에 또다른 미래를 보는 자가 있었고, 그가 죽고 내가 태어나 능력을 물려받았다는 의미다.

 그러한 기원 때문인지 마이트레야 족은 몰살 위기까지 갔었다. 우리는 전쟁을 부르는 무리라며 박해받았고, 살아남기 위해선 제다이의 본거지인 코러산트에 몸을 의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코러산트에 발을 디뎠던 시절, 그 시절 은하에는 불행만 가득했다. 자연스럽게 내가 보는 것들 역시 음울한 것들 뿐이었다. 멸망, 파괴, 몰락과 암흑. 예지는 전부 들어맞았고 마치 나는 예언자가 아니라 저주의 말을 읊는 주술사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던 때에 나는 김라현을 만났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전기가 튀는 감각.

 수십만가지의 미래가 이마의 보석을 통해 내 머리로 흘러들어왔다. 격렬한 싸움과 폭발음, 라이트 세이버의 공명음, 피비린내 하나 나지 않는 참혹한 전쟁터. 치열하게 끓는 것은 마주한 영웅의 감정인지 시스의 기세인지.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블랙홀같은 미래에 나는 강렬하게 매료되었다. 온 우주에서 시스를 절멸할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김라현일 거라고, 나는 만나자마자 확신했다. 나는 드디어 저주가 아니라 희망을 보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게 벌써 10여년 전의 일이다. 김라현은 영링 치곤 꽤 늦은 나이인 8살에 사원에 들어왔으니까. 그 짧은 시간동안 우리는 스승을 만나고, 파다완의 과정을 거쳐, 제다이가 되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전쟁은 끊임없이 벌어졌지만 김라현이 직접 시스와 대적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제다이 사원 측에선 김라현이 시스와 접촉하는 일을 꺼려하는 듯했다. 아직은 치기어린 놈이라, 실력이 부족해서, 평정심을 잃고 날뛸 지도 몰라서. 짚이는 지점은 많았지만 나는 확신하지도, 동의하지도 않았다. 선택받은 자, 시스의 대적자, 우주의 영웅. 온갖 프로파간다적 타이틀은 전부 붙여줬으면서 김라현을 믿지 않는다는 건 모순이지 않는가? 게다가 김라현을 의심한다는 건 곧 나 스스로를 의심한다는 일이다. 나는 나를 믿었고, 김라현을 믿었다. 또한 제다이도 그럴 것이라고 믿었다…….

 “…….”

 눈을 감고 차분하게 과거를 복기하다 보면 곧 머리를 옥죄던 두통도 차츰 가라앉았다. 꿈을 통해서든, 텔레파시든, 직접 눈에 보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미래를 전달받을 땐 늘 두통을 동반했다. 가라앉는 시간은 그날 컨디션에 따라 달랐지만 길어도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 돌아갔다. 나는 약간의 평온함을 느끼며 미간을 좁혔다. 시야의 초점이 맞춰지고 나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씻고, 머리를 묶고, 매무새를 다듬는 일련의 과정이 매끄러웠다.

* * *

 몸가짐을 정비한 나는 아침 수행을 위해 공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김라현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다가와 말을 걸었다.

 “좀 늦었네. ”

 “5분. ”

 “꿈 꿨냐. ”

 “어. 어떻게 알았는데. ”

 “니가 두통 말고 수행 늦을 일이 뭐가 있냐. ”

 “그래. ”

 “근데 나도 꿈 꿨어. ”

 “무슨 꿈?”

 내가 되물었지만 김라현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평소의 수행 루틴대로 눈을 감고 포스의 흐름을 느꼈다. 조금 집중하자 어마어마한 양의 포스가 김라현의 주변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는 게 느껴졌다. 평소와는 다른 기세라 나는 재차 되물었다.

 “무슨 꿈. ”

 대답 대신 가벼운 농담이 돌아왔다.

 “니 옆에서 지내다보니 예지몽이 옮았나. ”

 나는 그 태도에 오히려 신경이 과민해졌다. 김라현이 자신의 상태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지 않는 건 종종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상세하게는 아니어도 대략적으로나마 설명해주는 게 내가 아는 김라현이었다. 오늘처럼 아예 말을 돌리는 건 극히 드물었다.

 나는 좀더 집요한 투로 말했다.

 “뭔데. ”

 “그냥. ”

 ‘그럴거면 말이나 꺼내질 말지. ’

 나는 생각하며 명상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내가 꾼 꿈 얘기해줄까. ”

 그러자 김라현 역시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둘은 고요한 수행실 바닥에 앉았다. 털퍽, 하고 천이 공기를 감싸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차가운 대리석의 공기가 피부를 식혔다.

 “맨날 꾸던 그 내용 아니냐. ” 김라현은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좀 다른데. ”

 “어떻게. ”

 “이번엔 확실히 봤거든. 네 라이트세이버가 어둠을 베는 걸.”

 “…….”

 김라현의 포스가 점차 고요해졌다. 얼핏 짐작하기론 평정을 찾는 듯했지만, 그를 오래 본 나만큼은 알 수 있었다. 고요한 수면같은 흐름 아래에는 여전히 휘몰아치는 감정이 분명히 존재했다.

 나는 좀더 강한 어조로 확신했다.

 “내 예언은 안 틀린다는 거 알지. ”

 “알지. ”

 “내가 본 것도 믿지. ”

 “믿는데. ”

 “그런데. ”

 “나는 언제쯤 제다이 마스터로 인정 받을 수 있는 건데?”

 ……여기에 대해선 나도 대답할 수 없었다. 김라현이 언제 정식 제다이로 승격하는지. 언제 영웅이 되고 언제 인정받는지. 시기와 관련된 예지는 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너는 상념이 너무 많아. 너는 너무 감정적이야. 그게 제다이 김라현을 해칠 거다. 그래서 승격은…… 보류. 이 얘길 언제까지 들어야 해?”

 “…….”


 “석가영. 너는 알잖아. 그 상념이, 감정이 나를 더 높은 곳까지 도달하게 만든다는 걸.”

 “알아.”

 “나는 더 강해지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내 이름을 떨치고 싶다. ”

 “그래.”

 “그게 나쁜가? 내가 무엇을 위해 싸우고, 누굴 지키기 위해 싸우는지. 그것만 알고 있으면 되는 거 아냐?”

 “…….”

 “나는 제다이의 편이야. ”

 “알지. 너는 제다이의 기사다. ”

 “그런데 그런 제다이들이 나를 믿지 않아.”

 “……. ”

 “그들이 믿는 건 내가 아니라 네 예언이라고. ”

 서늘한 목소리에선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김라현의 말대로, 그 마음이 김라현의 포스를 강하게 만든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쫓았다. 김라현은 수행실의 창문 너머를 응시하는 중이었다. 나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는 자신의 고향, 시더우드 행성을 쫓는 중이었다. 오래 억눌러온 감정과 욕망. 그것을 터트린 계기가 시더우드에 있을 테다…….

 “김라현.”

 나는 그를 불렀다. 그는 대답 대신 물었다.

 “나를 믿어?”

 나 역시도 고민 없이 답했다.

 “믿는다. 내 예지가 아니라 너를. ”

 그를 믿었다. 그가 내 예언을 실현시킬 것이라고 믿었다. 이 세상에 단 하나 특별한 사람이 있다면 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눈이 마주치면 전기가 튀는 감각. 그걸 가져다준 사람은 김라현 하나 뿐이었으므로.

 “시더우드로 갈 거다.”

 김라현이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단한 어조로 말했다. 이렇게 비밀스럽게 말한다는 건 제다이를 구속하는 절차나 제약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단 의미겠지. 가는 길이 험할 텐데. 돌아오면 환영 대신 징계가 널 맞이할 거다. 그런 말보다 먼저 떠오른 건…….

 “언제 돌아올 건데.”

 계시받지 못한 것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미래는 대답해주지 않지만 김라현은 대답해주므로. 나는 거리낌없이 그에게 질문할 수 있었다.

 “금방. 확인만 하고 올게. ”

 “무슨 확인. ”

 “꿈 꿨다고 했잖아. 시더우드에 관한 나쁜 꿈이거든. 그게 정말 꿈인지, 아니면 예지몽인지 살펴보고 싶어. ”

그와 동시에 스치는 섬찟한 기분. 머리로 밀려들어오는 고통이 아니라 피부가 서늘해지는 감각. 이건 예지가 아니라 예감이다. 김라현이 금방 돌아오지 않을 거라던가, 멀쩡하게 돌아오지 않을 거라던가.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단 가능성. 나는 이것에 대해 털어놓고자 입을 열었지만, 금방 다물 수밖에 없었다. 김라현의 말 때문이었다.

 “믿는다면, 말리지 마. 나를 그냥 보내줘.”

* * *

 수행실에서의 이 대화를 끝으로, 김라현은 종적을 감췄다.

 내가 들은 소식은 시더우드가 붕괴되었으며, 그건 제다이의 힘으로도 막을 수 없었단 얘기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김라현이 죽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나는 아직도 김라현이 시스를 몰락으로 이끄는 미래를 예지하므로. 



오래 전 멀고 먼 은하계에…

전쟁, 한창 공화국과 시스 제국의 전쟁이 진행되던 때에,

사라졌던 선택받은 자The Chosen One가 제다이 사원으로 귀환한다.

그러나 그는 변절하여 칼끝을 제다이에게로 돌리고,

곧 제다이 사원은 멸망하게 된다.

미래를 보는 자Visionary One는 그저 지켜볼 뿐.



 은하의 가장자리. 티라우 행성은 1분 1초도 쉬지 않고 끓어오르는 용암의 땅이었다. 발 디딜 곳보다 벌겋게 달아오른 액체가 더 많이 분포하는 행성. 이 무간지옥에서 석가영과 그의 스승은 제다이였던 자, 김라현과 조우했다. 끈질긴 추적의 성과였다.

 빠른 속도로 흐르는 용암을 사이에 둔 채, 두 남자와 한 남자는 3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대치했다. 김라현이 타고 온 우주선은 이미 망가진 지 오래였다. 생명이 살아갈 수 없는 죽음의 대지. 하나의 우주선. 두 명의 기사와 기사였던 자. 우주에 끝이 있다면 오늘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세 사람을 감쌌다.

 “나를 믿지 않은건 제다이들이잖아.”

 김라현이 라이트세이버를 고쳐쥐며 말했다.

 “김라현.”

 석가영은 침착하게 그의 이름을 호명했지만, 사실 반쯤은 직감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 붉은 빛이 비친 순간부터, 그는 이미 제다이이길 그만뒀다고.

 “대답해봐. 석가영. 제다이들이 나를 믿었었나?”

 “나는 너를 믿었지. 나는 여전히 제다이이고. ”

 “말장난. ”

 “그렇지만 사실이다. ”

 “…….”

 김라현은 침묵했다. 아마 그 스스로도 석가영이 김라현을 믿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을 테다. 하지만 그 정도의 믿음으로 사그라들 분노였다면 그가 변절할 일 역시 진작 없었을 것이다. 석가영의 믿음은 과거의 유물. 혹은 미련. 이제는 고작 그 정도의 무게일 뿐. 김라현은 솟구치는 불꽃처럼 뜨거운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래. 그렇지. 그렇다면 저 자는?”

 김라현의 시선은 석가영의 옆에 서 있는 스승에게로 꽂혔다. 스승은 대답 대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석가영은 알고 있었다. 스승이 김라현을 믿지 않은 건 아니라고. 스승은 김라현에게 많이 기대했고, 또 기대를 충족시켜주길 누구보다 원했다. 다만 오만함에 잠식되지 않길 바랐을 뿐이다. 조금만 짚어주면 김라현도 알아차릴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김라현도 스승도 그걸 원친 않았다. 두 사람은 대화 대신 라이트세이버를 꺼내고 서로를 겨누길 택했다.

 “……!”

 석가영이 말릴 새도 없이, 둘은 합을 맞춘 것처럼 동시에 서로를 향해 뛰어올랐다. 빛의 입자가 허공을 가르며 윙, 윙, 진동했다. 강력한 포스가 석가영의 육신을 짓눌렀다. 일반인이었다면 숨도 못 쉬고 그대로 기절해버렸을 압박감. 어마어마한 양의 포스가 그야말로 해일처럼 휘몰아쳤다.

 “내가 최고의 제다이라고 말 해!”

 “…….”

 김라현은 포효는 절규에 가까웠다. 그 목소리가 석가영의 피부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러나 스승은 눈 하나 깜빡 않고 김라현을 마주보았다. 검을 고쳐잡은 김라현은 다시 팔을 물렸다가 스승을 완전히 절단할 기세로 도약했다. 공중에서 한바퀴 돌며 가속을 붙인 검식을 스승이 간신히 막아냈다.

 “……!”

 “말 해.”

 “…….”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보지.”

 “그렇겐 말 못 해. 넌 최고의 제다이가 아니니까.”

 스승은 낮게 대꾸했다. 석가영은 그 도발적인 말의 속뜻을 알고 있었다. 그건 일종의 충고이자 걱정이다. 네가 하는 행동은 전혀 제다이답지 않단 충고. 그러니 고쳐놓겠다는 뜻의 걱정. 물론 김라현의 귀에는 하잘것없는 벌레 소리처럼 들렸을 테지만. 김라현이 귀담아들을 성정이었거나 스승이 곱게 차근차근 얘기할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이렇게 파탄나지도 않았을 관계다.

 지잉, 지잉.

 두 사람이 태우는 플라즈마가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그럴 때마다 강렬한 파열음 대신 발 밑이 낮게 진동했다. 기세는 점차 김라현 쪽에게로 기울어지는 중이었다. 그의 빠른 검식이, 그를 잡아먹은 분노가,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한 점에 모여 거대한 기세를 만들어내는 중이었다. 그 포스가 너무 강렬해서 스승의 몸은 점차 절벽 쪽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석가영은 자신의 포스로 스스로를 감싸 지키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둘의 싸움에 개입한다는 건 석가영에게 허락된 선택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참동안이나 스승을 몰아붙이던 김라현은 어느 순간 자조하듯 말했다.

 “그래. 더 이상 상관 없어.”

 그와 동시에, 석가영의 이마가 달아올랐다. 화끈한 열기와 함께 아지랑이가 낀 것처럼 시야가 흐릿해졌다. 이것은 예지인가…….

 “…….”

 스승은 침묵한다.

 “제다이도, 예언도. 이긴다. 내가 아니라 예언을 믿은 자들한테, 틀렸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김라현은 결의를 다진다. 석가영의 시야는 점차 선명해진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핏빛으로 물든 눈동자. 붉은 눈동자는 빛을 흡수하는 것처럼 형형해지더니 곧 파충류의 것처럼 번뜩인다.

 김라현이 자신의 라이트세이버로 스승의 무기를 짓누른다. 스승의 몸은 금방이라도 용암 속으로 고꾸라질 것처럼 꺾인다.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김라현은 그대로 다시 한 번 도약한다.

 목표가 되던 스승은 순식간에 균형점을 옮긴다. 가뿐하게 휘둘러지는 라이트세이버, 잘린 것은 스승의 팔이 아닌 김라현의 다리.

 석가영은 소리 없이 비명을 내지른다.

 공중에서 중심을 잃은 사지가 아슬아슬하게 절벽에 걸쳐진다. 김라현의 팔이 억척스럽게 절벽 가장자리에 매달린다.

 스승은 뒤돌아보지 않고 석가영에게로 걸어온다.

 흐릿해지는 시야.

 절벽의 끝에서 손가락은 점차 한 점으로 작아지고, 용암은 소리 없이 선택받은 자의 몸을 집어삼킨다.

 부정의 순간.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포스의 힘이 사라지고 나서야, 석가영은 깨닫는다.

 이것은 예지가 아니다.

 이건 내가 봤던 그 어떤 예지보다도 끔찍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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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멀고 먼 은하계에…

제다이의 전설은 퇴색했고 우주는 법도를 잊었다.

그러나 미래는 잊혀지지 않는다.

황야, 쓰레기 더미로 제국군의 비행선이 착륙했다.

붙잡히지 않기 위해 소년은 달렸다.

시간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라.

 격언은 제다이에게 시답잖은 농담으로 통용됐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눈에 띌수록 소문도 박차를 가해 퍼졌다. 시스 병사들은 뜬구름 같은 이야기를 따라 소년을 좇았다. 사라진 제다이는 사이비, 협잡꾼, 지나간 한 겹 꿈을 놓지 못하고 나비를 쫓는 광인이라 일컬어졌으나 제국을 비롯해 이름깨나 알린 행성의 지배자들이라면 단 한 사람의 가치는 톡톡히 알았다. 마이트레야의 미래를 보는 자. 그가 제국의 미래를, 우주의 흐름을, 다음 세기의 주인을 안다고 했다. 믿음이 자리한다면 거짓이 생명을 얻기 한순간이라. 진실보다는 유일이 중요했고 가장 먼저 석가영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겠단 욕망이 은하계를 넘나들어 흘러넘치는 한 그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사막. 금속 쓰레기에서 흐르는 중금속과 멋대로 기계 팔을 휘두르는 폐품 산을 벗어나 여기까지 자신을 따라온 병사는 총 셋이었다.

 “황제가 나를 찾나.” 언제고 답은 침묵뿐이다. 황제가 아니라면, 이어질 목소리가 의문보다 확신에 가깝더라도 금방 끊겼다. 그 대신 자주빛 검을 치켜든다. 이 검이 모래사장을 그을리며 궤적을 남길수록 제 행방을 알리는 꼴이었으나, 이미 제다이의 생존을 아는 이들에게 숨겨서 무엇하랴. 목을 베면 고발할 혀도 잃는다. 그리고 광선검의 진동보다는 크게 땅이 울었다.

 석가영은 개미귀신이 병사들을 물고 사라진 깔때기 모양의 구덩이를 내다 보았다. 살생을 멀리한다는 마음가짐은 흐려져 이미 몇 번이고 제 손으로 타인의 목숨을 끊었으나 운이 좋다면 이렇게 우회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한 아이를 구했을 때 천진한 목소리가 물었다. 미래를 본 거예요? 이마에 박힌 돌이 가진 의미를 모르는 만큼 진실했다. 그러므로 오래간만에 그는 불변의 언어를 입에 올렸다. 명백한 사실. 미래가 아니라 이미 벌어진 이야기. 사막의 밤은 별이 총총 빛난다는데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두 눈엔 끝이 보이지 않는 흑야가 덮쳤다. 나는 미래 따위 볼 수 없단다. 마야트레야의 소년은 오만으로 사신을 저버렸으니 대가를 짊어졌다. 양 눈을 뽑아 용암에 녹이려는 순간, 붕대를 벗고 홍색 눈이 다시금 햇빛을 맞이하고 석 달이 흘렀는데도 눈이 부시기만 할 뿐. 종달새 대신 아침을 깨우던 두통이 사라져 새벽녘이면 샘물처럼 정신이 맑았다. 미래를 보지 않아도 삶은 계속되었다. 익혔던 자연의 법칙은 아까처럼 그의 목숨을 지속시켰다. 포스가 젊은 영혼의 육신을 영원한 여름에 가두었으므로 망각의 여신이 그에게 입맞춤하는 일도 없었다. 이제 꿈은 언제고 주인을 작열하는 지옥 열기로 떠밀었다. 고치지 못한 과거를 되풀이하면 마침내 꿈은 주마등처럼 과거로 과거로 거슬러 어린 날의 요람으로 향했다. 본 적 없는 노파는 눈두덩이까지 주름져 두 눈을 감은 채로 제 귓가에 속삭였다. 우리는 보는 자 Visionary One. 막아설 수 있겠지만 알아두렴. 우리는 예외가 아냐. 누구든 자유 의지를 증명한다지만 모두가 멈출 때조차 모래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물은 흐르며 해와 달이 기운단다. 그들이 행동할 수 없기에 너도 행동할 수 없음을 받아들여라. 공평하지. 관측은 결국 시각차란다. 아주 약간 앞당길 뿐. 망막에 담으려면 한 걸음 물러서야 하고 당연히 그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하나 우리가 본 풍경은 분명 이루어진다. 잠이 깨면 대개 동이 트기 전 어둠에 감쌌다. 행여 들킬세라 초를 켜지 않으니 어두컴컴했다. 그리하여 내내 불투명한 미래, 눈이 부시지 않는 밤 속에서 석가영은 가끔 영혼의 평온을 얻었다. 어느 새벽엔 진실로 영원히 잠들길 바랐다. 그럴 때마다 소년은 몸을 일으키고 동쪽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초점 사이로 산등성이 사이 작은 해가 명료하게 보일 즈음이면 모래알, 잎사귀, 바다의 암초나 절벽의 이끼 사이로 포스의 흐름이 찾아들었다. 마이트레야는 백사장 가까이 터를 잡았으므로 해수면 위에 땀에 젖은 몸을 뉘어 씻기고 넘실거리는 파도를 넘나들며 공중의 달을 올려다보는 기분을 느꼈다. 소금물로 온몸을 적시면 곧 먹구름이 둥근 달을 가리고 폭풍이 쏟아진다. 다음으로 번개.

 눈이 마주치자마자 전기가 튀는 감각. 생애 첫 예언으로 세상의 첫 산소를 내어준 별의 멸망을 담았으나 미래를 보는 자에게 과연 탄생만이 유일한 시작일까? 무수히 교차하는 세계와 몇만 개의 미래 사이로 가장 먼저 본 희망이 기어코 숨통을 트이게 했다. 그때 나는 드디어 저주가 아니라 희망을 보는 사람이 되었으니 삶이 보석처럼 선명한 방점을 찍었다. 물고기가 당연히 아가미를 뻐끔거리고 식물이 햇빛을 따라 줄기를 뻗듯, 선택받은 자를 마주해 나 역시 그를 선택한 순간에 내 생명은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오로지 믿음. 영원한 믿음이다. 영원한 승리도, 패배도 없다면 영원한 믿음은 있을까? 제다이들이 선택된 어린 자가 바라마지 않던 자리를 감춘 뒤 사원은 무너졌고 승리의 매듭은 녹슬어 퇴색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듯이 당연하게 석가영은 김라현을 믿었다. 그리고 황야를 걸었다. 우주를 날았다. 어린 자에게 포스의 흐름을 가르쳤고 제국을 역추적했다. 황제의 목적을 가늠하며 혁명군과 접촉해 정보를 교환했다. 비밀스러운 잠입 임무로 생존한 옛 전우를 만나면 종종 그들은 그의 맹목을 걱정했다. 아직도 달콤한 과거에 머무르냐며 무모한 꿈에서 깨어나라 말했다. 석가영은 그 말에 거짓 변명 대신 침묵을 택했다. 진실로는, 그들이… 멋모르고 기만한다 느꼈다. 선택된 자라도 나를 휘두를 순 없다. 내가 그를 믿기는 온전한 내 선택이다. 김라현은 미래를 보는 자가 아닌 석가영에게 선택받았다. 당신들은 내가 그를 보조하는 줄 알지만 광휘에 휘둘린 건 누구지. 나는 적합한 자리에 섰을 뿐 그림자의 가치는 빛에 뒤지지 않고 어둠은 내 무릎을 굽히지 못해. 그래서 소년에 해박한 이들은 단지 필요할 정보와 장비를 건네며 뒷배가 되어 주었다. 최소한의 장기말로 끌어당긴 정보에 몇 가지 확신을 덧댄 결론. 제국군은 자신을 습격할 때 일언반구하지 않는다. 도발은커녕 자백제 투여를 우려했는지 포로로 삼을라치면 재빨리 목숨을 끊었다. 살아남은 제다이에게 정보를 감춘다기엔 결벽적이어서. 석가영은 미묘한 기대를 걸었다. 지난 몇 년간 단 한 번도 저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친우가 재회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순간이 필시 각별하기에 여태껏 미루었다면. 여기까지 상상이 뻗으면 불합리한 망상으로 변질하기 전에 곧바로 숨을 골랐지만, 그래도 석가영이 김라현을 다시 만났을 때 할 말은 이별한 순간에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제 나는 미래를 볼 수 없다. 너처럼 현재만을 본다. 그런 우리가 같은 풍경을 본다고 확신하는 데에 두 눈은 과분하다. 이 모든 마음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기다렸다.”

 내 처음이자 마지막 예지는 김라현이 시스를 몰락으로 이끄는 미래. 그게 기뻤던 이유는 단지 내가 보았기 때문이다. 관측은 그 순간을 눈이 닿는 가까운 거리에서 똑똑히 손에 쥐었단 의미니까. 고통이 선명해질수록 희망도 커져갔다. 너는 분명히 증명한다. 너는 필시 보답한다. 네가 오래 살아 나의 믿음은 영원해진다.

 그렇지 않더라도 너를 믿는다.

 증명도, 선택도, 중요치 않다.

 네가 단지 너이기에.

 너를 믿어.

 붉은 섬광이 황제를 가른다. 어두운 밤이 끝나고 태양보다 붉은 아침이 찾아왔다.



오래 전 멀고 먼 은하계에…

반란 연합이 시스 제국의 칼날을 베어 낸다.

미래를 보는 자Visionary One가 오래된 과거로 돌아간다.

그 끝에는 언제나 선택된 자The Chosen One가 머무른다

검이 부딪힌 후로도 끝나지 않는다.

시간은 무심하리만치 조용히 흐른다.



 “미안하다는 말은 듣기 싫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김라현.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

 “나 믿지.”

 겨우 뱉는다. 사실 듣고 싶은 말은 없었다. 뭐라 말할지 뻔히 알아서, 기대는 사치스러워서…… 오로지 나안으로 너를 담을 순간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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