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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a Lady On Fire>

  • 작성자 사진: Kreidele
    Kreidele
  • 2023년 9월 5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3년 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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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dele


<Portrait Of a Lady On Fire>

by Céline Sciamma

Romance / UK / 1998 / 99min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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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K Side


 여자는 흠뻑 젖은 몸으로 모래사장에 발을 디뎠다. 축축하게 젖은 드레스 자락은 걸음을 뗄 때 마다 몸에 묵직하게 감겨 왔다. 바다의 비린 내가 났다. 유쾌하지 않은 내음이었다. 마부 하나가 그녀를 마중 나와 달구지에 짐과 여자를 실었다. 덜컹이는 달구지에 앉아 앞을 내다보자면 저 멀리 커다란 저택이 보였다. 애크로이드 저택이었다. 저택은 외롭고 우울해 보였다.


 크리스틴 리우의 임무는 이 음울한 저택의 ‘아가씨’ 를 그리는 것이었다. 이름난 화가인 그녀에게 ‘아가씨’ 의 아버지이자 저택의 주인인 잭 애크로이드 백작이 제 딸의 결혼에 필요한 초상화를 의뢰한 탓이었다. ‘아가씨’ 인 아델 에우리디케 애크로이드는 올해로 스물이 되어 혼기가 찼는데, 저택에 온 화가들을 내 쫓아가며 초상화를 그리길 거부해 결혼이 미뤄지고 있단 것이 애크로이드 백작의 고민이었다.

 크리스틴이 이곳에 오기까지 세 명의 화가가 아델의 초상화를 그리길 포기했다고 했다. 결혼을 하지 않고자 하는 그녀의 완고한 고집 때문이었다. 때문에 애크로이드 백작은 크리스틴이 자신이 화가라는 사실을 숨기고 제 딸에게 접근해 초상화를 그려 주기를 바랐다. 백작은 제 딸에게 거짓말을 했다. 저택에 손님이 올 것이라고, 그가 네 말동무이자 산책 친구가 되어 줄 것이라고. 저택에 화가가 온다는 사실은 철저한 비밀이 되어야 했다.

 첫 사흘은 아델의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처음 아델을 만난 것은 비가 갠 후의 바닷가였다. 아델은 하녀 리지와 함께였는데, 말 없이 크리스틴의 곁에서 바닷가를 걷던 그녀가 갑자기 모래사장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낭떠러지로부터 딱 세 걸음 앞, 아델이 멈췄다. 금빛 머리칼이 휘날리는 가운데 그녀가 뒤돌아 보았다. 새파란 눈동자가 반짝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이 순간을 꿈꿔 왔어요!”

 아델이 웃었다.

 “죽음을요?”

 뒤따라 달려온 크리스틴이 물었다.

 “달리기요.”

 아델이 대답했다.

 숨이 찼다. 크리스틴이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저택으로 돌아간 크리스틴은 초상화를 그리는 데 집중했다. 모델은 눈 앞에 없었지만 그녀 정도의 실력이 되는 화가에게 그 사실은 그다지 걸림돌이 아니었다. 그녀는 아델의 녹색 드레스를 직접 걸치고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그녀가 이 드레스를 입는 것을 상상했다. 크리스틴의 그림은 정물화가 아닌 상상화였다.

 작업은 순조로웠다. 크리스틴과 아델은 매일을 함께하였으며 그녀는 가까이서 아델을 관찰했다. 그녀의 숨결, 뺨의 솜털, 속눈썹의 길이, 부르튼 입술 같은 것들을 전부. 그러던 그녀가 아델에게 자신이 화가임을 고백한 것은 충동이었을 것이다. 그녀 앞에서 진실되고자 하는 충동.

 “나는 화가고 부탁을 받아 당신을 그리러 왔어요.”

 크리스틴이 고백했다.

 “나랑 이 초상화는 비슷하지 않아요. 당신을 닮지도 않아 슬프네요.”

 그림을 본 아델이 말했다.

 차라리 그녀가 불같이 화를 냈다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화를 내는 대신 크리스틴을 가만 응시했을 따름이었고, 크리스틴은 역으로 제가 기이한 분노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날 밤 그녀는 완성한 초상화에 물감을 덧칠해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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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 Side

 아델이 아는 사람들 중 결혼하여 행복한 여자는 단 하나도 없었다. 웃는 얼굴로 결혼한 여자와 슬픈 얼굴로 결혼한 여자들 사이에서조차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사정이 이러하니 제정신이 박힌 인간이라면 누구든 결혼을 기피하기 마련이리라.

 즉 아델 에우리디케는 죽음을 맞이할지언정 그 빌어먹을 그림의 모델이 될 생각일랑 추호도 없었다. 꼼짝조차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을 때 아델은 시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고, 누군가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 또한 거북스럽기 그지없었다. 기록물이 되어 남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면 손끝에서부터 소름이 돋았다.

 “나는 화가고 부탁을 받아 당신을 그리러 왔어요.”

 크리스틴이 처음 그렇게 고백할 적 아델은 놀라지 않았다. 모든 일이 그리 쉽게 풀릴 리 없다는 것쯤은 이미 진즉부터 알고 있어서였다. 이토록 완벽한 타이밍에 나타난 구원자라면 필시 이 정도의 의도는 품고 있었으리라. 도리어 배신이 빠르게 이루어져 다행이었다. 십 년쯤 후에 본색을 드러냈다면 늘상 최악을 대비하는 성정이라도 동요를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배신은 아델에게 마지막 한 방을 먹였다.

 그 이상 저항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 원인은 불분명하다. 마침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고, 눈앞에 서 있는 여자를 거절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양쪽 중 무엇이 되었든 결과는 하나밖에 없었다. 결코 입을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녹색 드레스를 입고서 그의 앞에 앉았다.

 그럼에도 이를 희생이라고 칭할 수는 없을 테다.


 캔버스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넓다. 이 커다란 면 안에 온통 자신만이 들어찬다고 생각하니 아델은 기가 막혔다.

 “나 혼자서만 사용하기에 여긴 지나치게 넓어.”

 사실 내가 원하는 건 조금 더 다른 그림이라고, 내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엿보고 싶어 모델이 되길 허락한 거라고, 그런데 이 그림은 너무나 상투적이라고…. 수많은 말들이 그 한 문장에 함축된다. 나머지 말들은 전부 눈동자에 넣어 전했다. 크리스틴은 화가니, 분명히 귀로 듣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언어를 더 잘 이해할 것이다.

 아델이 자신의 그림에 대한 혹평을 늘어놓았음에도 크리스틴은 기꺼이 아델을 위한 더 ‘개인적인' 그림을 하나 더 그려 주었다. 옷 속에 갇혀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림과 달리 그 그림에서 아델은 웃고 있었다. 이 웃음에 담긴 것이 온전한 기쁨은 아니었다. 아델 에우리디케는 그 정도로 상냥한 인간이 되지는 못한다.

 아델은 오로지 그 미소로 크리스틴에게 기억되길 원헀다.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을 배신했다면 응당 그와 비슷한 몫을 돌려주어야 옳으니까. 나는 당신만 아는 얼굴을 보인 다음에 사라질 것이다. 불타오를 것이다. 이윽고 재가 되어 아무런 물질이 남지 않을지언정, 그 손과 눈에는 이 얼굴과 웃음이 남아 영영 기억과 꿈속을 떠돌아다니길 원했다.

 크리스틴 리우는 바로 그 손으로 아델 에우리디케를 단두대로 보낸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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