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sommar>
- Akiban

- 2023년 8월 20일
- 1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3년 9월 8일

Akiban
<Midsommar>
by Ari Aster
Horror, Gore / Sweden / 2022 / 171min / 18+
“제정신이 아니야.”
“바, 반…….”
두 사람의 목소리는 가까이에 서있는 서로에게만 와닿았을 뿐, 다른 이들에게는 닿지 않았다. 그들은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으며 혼란에 빠진 듯, 마치 거한 중상을 입고 땅을 기어가듯 들끓는 목소리로 괴로움을 표출할 뿐이었다. 조금 더 시야를 멀리해보자, 절벽 아래의 바위에 하반신이 산산조각 나 으스러진 노인이 보다 더 징그러운 울음소리로 바닥을 긁고 있었다. 그 노인의 옆에는 한 구의 시체가 있었는데, 머리가 으깨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피가 아직도 웅덩이를 만들며 넓게 퍼지는 상태였다. 아키라는 죽은 시체의 얼굴이 어땠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그를 만난 건 오늘이 처음이었고, 절벽에서 뛰어내리기 전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모습만이 잔상처럼 스쳤으므로 아마 앞으로도 영영 그의 얼굴을 기억하거나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실질적으로 얼굴을 바라본 시간이 채 5분밖에 안되는 인간을, 아키라는 오래 기억할 의지조차 없었다. 애초에 그런 의지가 있다 한들, 주변에서 하반신이 으깨진 노인과 모든 심상을 공유하듯 울부짖어대는 인간들의 목소리 탓에 분명 머리가 표백제로 세탁하듯이 깨끗해졌으리라.
그들은 높은 절벽에서 뛰어내렸음에도 죽지 않은 이에게 깊게 공감하고 모든 것을 나눌 듯이 굴면서도, 곧이어 몇몇 사람들이 거대한 나무망치를 들고 그 노인에게 다가갔다.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이었다. 상식적으로 절벽에서 추락해 다친 환자에게 망치를 들고 가까이 가는 인간이 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는가? 그에 대한 불만,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이 마무리되기 전에 그 묵직해 보이는 망치는 고통스러워하는 노인의 머리를 단박에 내리쳐 터뜨렸다.
“아아아아악! 무슨,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다들 미쳤어? 사람이, 사람이 죽었어! 아니, 사람을 죽였어! 미친놈들, 당장 돌아갈래! 돌아가겠다고!”
“하.”
절규에 찬 외부인의 비명소리가 직후 이어졌다. 그들을 초대한 지인으로 보이는 마을 사람이 내 얘기를 들어봐, 하며 낮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키라와 반조에게는 전혀 중요한 내용이 아니었다. 기가 차다는 듯한 한숨을 내쉰 반조는 아키라를 바라보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이것 봐. 너랑 있으면…… 늘 이런 일이 생긴다니까.”
“……이게, 이게 내 탓인 것처럼 말하지 마.”
“글쎄…….”
솔직히, 이러한 상황을 목도한 직후 나올법한 반응은 아니었다. 두 사람 다 원체 기이하고 끔찍한 일들을 적지 않게 겪어왔던 덕분이겠지만, 이건 평균적인 인간들의 기준에선 좋은 점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반조는 헛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한동안 별 탈 없이 지내나 싶었는데, 해외까지 휴양차 온 여행에서 이따위 일에 휘말리다니 기가 막혔다. 심지어 이 마을에 오게 된 이유는 아키라가 폐쇄되고 조용한 편인, 외딴 시골 마을을 선호해서였다. 마음 같아서는 좀 더 시설이 좋은 도심 쪽으로 나가고 싶었으나, 오늘따라 완강히 반대하는 아키라의 고집을 꺾는 것보다야 하루 이틀 정도는 이 마을에서 보내는 게 나을 법하여 그만둔 일이 문제였다. 글쎄라고 하지 마. 내, 내 탓 아니야……. 단호하게 덧붙이는 아키라의 대답에 결국 인상을 찡그리며 웃은 반조는 느린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이런 꼴을 보았으니 당장 마을을 떠나도 이상할 건 없겠지만,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분명 떠나는 일조차 쉽지 않으리라는 막연한 생각. 이 막연함은 마치 오래전 가을날의 여행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여행지의 숙소에서 타이어 펑크가 났던 그 기이하고도 악의 서린 기막힌 우연들 말이다. 이 마을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고로, 반조는 당장 이 마을을 떠나자는 말을 꺼내기보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애초에 자신이 구태여 그 말을 하지 않아도 바로 근처에서 비명을 지르던 외지인이 돌아가겠다며 항의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어느 동아리 단체처럼 보이던 그들은 몇몇은 심약하여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고, 몇몇은 화를 내고 있었고, 몇몇은 차분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었다. 히스테릭하게─이런 상황에서 그 반응을 히스테릭하다고 하긴 좀 어려웠다. 아키라와 반조에 비하면 지극히 정상에 가까운 반응이었으므로.─ 집에 가겠다 소리치는 여자를 향해 마을 사람이 당장은 돌아가기 힘들다, 따위의 말을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겠지, 어디 쉽게 보내주겠는가.
“아키라.”
“으, 응?”
“이리 와. 너무 멀리 떨어지지 말고……. 뭐 하는 마을인지도 정확하게 모르니까.”
아키라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반조의 말에 그제야 고갤 돌려 그를 바라보고 손을 붙잡았다. 그래봤자 떨어질 일 없이 함께 같은 지붕 아래에서 잠들거다. 두 사람은 28세와 32세로, 이 마을에서는 여름을 지나가고 있는 인간이었으므로. 봄과 여름에 해당하는 인간들은 전부 다 같은 숙소 건물에서 자야만 했다. 침대는 달랐지만, 아키라는 바로 돌아누우면 반조가 보인다는 사실에 위안을 갖고 지난밤을 보냈었다. 이미 하룻밤 보냈으니 어쩌면 물에 약을 탔거나 하는 일 따위 진작에 당했을지도 모른다. 단지 두 사람이 심하게 저항하지 않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것일지도…….
하여간 붙잡은 손은 달라붙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땅에 쭈그려 앉아 바닥을 짚었을 때엔 마치 그 땅으로 자신의 손 자체가 뿌리를 내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는데 지금은 아니라니. 아키라가 정말로 뿌리를 내리고 싶었던 곳은 반조였는데.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질 무렵 혼란한 외지인들에게 마을 풍습을 설명하는 노파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이명이 들리듯 웅웅거리는 청각이었으나 어째서인지 그 노파의 목소리와, 반조의 목소리만큼은 선명하게 와닿았다.
“인생은 원이에요. 순환하는 겁니다.”
“호르가 인생 주기의 끝에 도달하면 겪게 되는 아주 오래된 풍습이죠. 제 차례가 오면 저 또한 기쁘게 뛰어내릴 거예요.”
“곧 태어나는 또 다른 아이가 그분들의 이름을 물려받지요.”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죽는게 아니라…… 생명을 주는 거예요. 필연적인 죽음을 기다리다 죽는 것은, 영혼을 더럽힐 뿐이니까요.”
“반조.”
“왜.”
“나, 나 무서워…….”
“……갑자기 뭐가?”
“네가, 네가 날 두고 떠날 것 같아서…….”
“…….”
“나, 날 두고, 가지 않을 거지? 자고 일어나도, 여, 옆에, 있을 거지?”
“넌…… 이 상황에서도 그게 더 무서워?”
“으, 응. ……왜? 그러면 안 돼?”
“안될 건 없지.”
어둠 속에서 느리게 붉은 눈동자와 노란 눈동자가 시선을 주고받았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주변에는 마을 사람들의 어린아이와 청년 인원수만큼, 침대들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놓여 있었으므로 누군가 이 대화를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둘만 남은 상황이 아닌 만큼 별로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아키라의 말을 마냥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아키라는 반조의 대답을 기다리듯 한참 응시했다. 반조는 결국 느리게 입을 열었다.
“그래……. 자고 일어나도 네 옆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푹 자.”
“으, 응. 고마워.”
아키라는 진심으로 그 대답이 기쁘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려 천장을 바라보는 정자세로 누웠다. 건물에는 벽부터 천장까지 온갖 다양한 그림과 룬 문자들이 빼곡하게 차있었다. 저 천장에 그림을 그리려면 얼마나 높은 사다리를 써야만 했을까? 아키라는 쓸데없는 생각으로 머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을 무렵 마을 사람들에게서 들은 풍습을 곱씹지 않으려면 이러한 사소한 잡념들이 필요했다. 그 풍습은 곱씹을수록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알고 싶은 욕심을 갖게 만들었다. 제 옆 침대에서 잠든 이를 자신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 죽는다면 어떻게 죽는 것이 좋을지. 그런 논제들…….
결국 아키라는 다시금 잡념을 주워 담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먹은 식사는 부담스럽지도 않고 적당히 맛있었어. 그거 하나는 괜찮았어. 내일도 그런 소소하게 작은 괜찮은 게 생기면 좋겠다…….
결론적으로, 오늘의 식사는 부담스럽진 않았으나 맛은 그저 그랬다.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구분도 안 됐다. 놀러온 외지인들 중 몇 명은 이미 독단적으로 돌아가버린 모양이었다. 식사시간 내내 그들의 이야기로 자와자와한 남은 일행들의 말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더니 체라도 한걸까, 아키라는 어딘가 거북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니까…….
속이 울렁거렸다. ……아니. 속만 그렇지 않았다. 시야가 주기적으로 어지럽게 돌아가는 착각과 함께, 그 시야에 들어찬 모든 요소들이 자신의 맥박을 따라 숨 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신이 아득히 멀리 느껴졌고 도리어 멀리 있던 것들은 아주 가까이에서 느껴졌다. 이를테면 편안함,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늑하고 잔잔한 파동. 현기증과 같은 기분을 나열하는 사이에 이런 표현이 적합하진 않겠지만, 아키라는 초점을 잃고 흐릿해진 눈동자로 정면을 응시하며 그저 계속 걸음을 옮겼다.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아도 몸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으므로 시야는 계속해서 변했다. 화관을 쓰고, 하얗고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웃으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은 춤을 추고, 멈추고, 춤을 추고, 부딪히고, 넘어지고, 다시 멈추고, 춤을 추고, 지쳐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이쯤에서 아키라는 자신이 이 춤 대회가 시작되기 전 마신 차에 약을 탄 건 아닐지 의심할 법도 했지만, 어지러운 현기증 때문에 사고는 정상적으로 굴러가지 않았고 평소라면 의심하고도 남을 부분을 짚어내지도 못한 채 빙글빙글 돌았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어울린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본다면 마치 스웨덴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축제로, 어제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은 한 사람과 나무망치로 머리가 깨져 죽은 또 한 사람의 이야기는 거짓말처럼 보였다.
‘반. 너, 너는, 안, 안 해……?’
‘내가 저기에 왜 껴? 하고 싶으면 너는 하던가.’
그, 그래도……하며 운을 떼던 목소리를 반조는 딱 잘라 다시 거절했었다. 아무래도 반조의 입장에선 냅다 이 문화에 스며들듯이 어울리는 아키라가 더 정신이상자로 보였다. 마을 사람들이 먼저 권하기야 했다지만 찝찝하지도 않은 건가. 애초에 반조가 알고 있는 아키라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마을 축제 중 일부인 다 함께 춤추기에 참여하자고 권해도 짜증이나 내며 거절하는 쪽에 가까웠다.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전까지 거쳐왔던 일들의 연장선인가? 아키라는 종종 평범한 인간은 보이지 않는 기행을 펼쳤고, 언제나 이상했으므로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어쩌면, 춤을 추기 직전에 마시던 차에 뭔가 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아키라가 고분고분 받아 마신 지점에서부터 아키라의 행동거지가 평소와 다르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 와중에도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은 하나였다. 사람들과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아키라가 멍한 표정에서 점점 웃는 표정으로 바뀌는 모습이었다. 바보같이 멍청하고, 넋 놓고 웃는 듯한 환한 얼굴. 하늘 위로 태양이 작열하고 있었으므로 아키라의 얼굴엔 그늘 한 점 없었다. 반조는 간혹 저런 웃음을 마주하곤 했는데, 그것은 아키라가 자신의 목을 조를 때나 더러는 칼로 내장을 쑤실 때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런걸, 타인과 어깨 한번 스치는 일조차 짜증 내는 아키라가 이런 상황에서 내보인다는게 썩 내키지 않았다. 미묘하게 미간이 좁혀질 무렵, 마을 사람 한 명이 가까이 다가왔다. 아키라를 응시하던 시야의 절반을 흰색 원피스가 가린다.
“안녕하세요. 이 차 드실래요?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러지 말고 한 잔 드시는 게…….”
“마음은 감사하지만, 억지로 마시고 싶지는 않군요.”
마을 사람은 미묘한 표정으로 반조를 바라보더니, 곧 다시금 친절하게 웃어 보이며 그럼 어쩔 수 없죠…… 하는 대답을 끝으로 멀어졌다. 가뜩이나 아키라가 약을 먹은 것이 아닐지 의심되는 상황에서 자신까지 아무거나 덥석덥석 받아먹고 싶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아까 전 있었던 식사도 거르고 싶었지만, 너무 눈에 띄게 마을 사람들의 풍습을 거스르는 모습 또한 어떠한 길로 이어질지 알 수 없었다. 아키라가 춤을 추며 웃고 있는 상황 이외에도 이상한 지점이 너무 많았다. 독단적으로 마을을 떠난 다른 외부인 말이다. 아무리 이 마을의 풍습이 기괴했고 떠나고 싶었다 한들, 보통이라면 일행들과 다 함께 떠났을 것이다. 다른 일행들 또한 이 마을이 내키지 않는지 어제부터 죽상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어쩌면…… 자칫 잘못하면 자신 또한 아키라를 두고 홀로 떠난 것처럼 상황이 조성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실, 아키라를 두고 떠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그렇게 한다고 하면, 아키라는 아득바득 자신을 쫓아올 테고 혼자 떠난 저에 대한 분노로 표정을 일그러트리겠지. 하지만 반조가 걱정하는 상황은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 ‘기차역으로 먼저 떠났다’고 이야기가 나오는 이들이 사실은 기차역에 간 적도 없는 상황을 염두에 두었다.
“반대로!”
북소리가 잠시 끊기고 다시금 이어진다. 더 빠른 템포로 이어지는 노래에 맞춰 얼마 남지 않은 인원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 아키라는 꿋꿋하게 그 사이에 남아 있었다. 원을 그리며 도는 아키라의 흰색 머리카락이 돌아가는 방향에 맞춰 흔들렸다. 마을 주민들이 준 새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덕분에, 아키라는 머리카락도 옷도 피부도 전부 새하얗게 일렁거리는 신기루처럼 보였다. 드문드문 놓인 붉고, 노랗고, 녹색의 자수들과 발걸음에 맞춰 스치듯이 지나가는 새빨간 눈동자만이 아키라가 그곳에 있음을 알아차리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흰 피부가 상기되어 옅은 분홍색으로 물들어갔다. 그리고 문득 반조는 깨달았다. 아키라가 자신과 마주 보는 방향으로 돌아갈 때마다 눈이 마주치고 있었다. 저만치 돌고 있으면 시야가 어지럽다 못해 현기증에 시달릴 것인데 아키라는 지독할 정도로 반조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 날 두고, 가지 않을 거지? 자고 일어나도, 여, 옆에, 있을 거지?” 반조는 결국 한숨을 터뜨리듯 헛웃음을 흘렸다. 이윽고 대열에 맞춰 흰색 옷자락을 휘날리던 마을 주민 두 사람이 쓰러졌다. 아키라만이 그 자리에서 느리게 걸음을 멈춰 서며 숨을 내쉬고 고개를 들었다.
“5월의 왕이다!” 순간 음악이 끊기고 마을 사람의 외침이 들렸다. 온갖 새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아키라는 잠깐 두통을 느꼈다. 비단 그뿐만이 이유가 아닐지도 모른다. 한참 움직인 몸에 무리가 와서 그런 걸지도 모르니까. 지끈거리고 사태 파악을 해내지 못한 두개골 위로 보다 더 큰 화관이 씌워졌다. “당신이 5월의 왕입니다.” “축하해요!” “무슨,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 잠깐만……. 어디로 가는 거예요? 잠시만…….” 억지로 끌려가듯이 걸음이 옮겨졌다. 앞을 향해 걷고 싶지 않았는데도 반강제로 걸어야만 했다. 호르가의 주민들은 마치 아키라의 가족이라도 된 것처럼 아키라를 중심에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화관 아래로 축 늘어진 흰색 머리카락만이 얼굴을 절반 가려주었다. 정신없이 찰칵거리는 소리가 두세 번 이어진 뒤에는 렌즈에서 눈동자가 떨어지자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반조였다. 아키라와 함께 사진을 찍고자 모여든 사람들과는 달리, 아키라와 마주 보는 곳에 반조가 서있었다. 부득이하게 끌려온 관계로 반조와 아키라 사이의 거리는 조금 멀었다. 아키라는 언제나 반조의 곁에 붙어서 있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했으나 심적으로 좁혀지지 않았던 거리만큼 떨어져 있었다. 흰 스케치북 위에 오색찬란한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낸 듯한 이쪽의 광경과 사뭇 다르게, 반조는 채도 낮고 어두운 옷들을 걸친 채 그곳에 서서…….
“반.”
자연스럽게 그를 향해 다가가려던 한 걸음이 중간에 제지당했다. 어깨가 붙잡혀 몸이 돌아갔다. 아무리 지난 며칠간 같이 식사를 했다지만 얼굴을 외울 정도는 아니었던 초면의 사람들이 아키라를 마치 아주 소중한 사람처럼 안아주고, 이마를 맞대고, 어깨를 다독이며 지나갔다. 그 일련의 과정들은 반조에게 다가가고 싶어 했던 아키라의 심상 따위가 아주 보잘것없고 하찮으며, 반조와 달리 아키라를 반겨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있음을 강조하는 행위처럼 다가왔다. 스쳐가는 사람들 중엔 무엇이 그리 기쁜지 아키라를 보며 환하게 웃거나, 벅차다는 듯이 눈물을 글썽이는 이마저 있었다. 아, 무언가 이상했다. 금방이라도 토할 듯이 속이 울렁거렸다. 이게 뭘까? 이게 뭐지. 그런 복잡한 속내 따위 아무도 배려해 주지 않은 채 그들은 아키라를 데리고 노래를 열창하며 만찬이 준비된 곳으로 향했다…….
그래서 지금이다. 아키라는 자신의 앞으로 일자로 쭉 서있는 이들을 응시했다. 그들 사이에는 비어있는 자리가 딱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반조의 자리였다. 온통 새하얀 옷들만 입은 풍경을 보아하니 다른 외지인들은 이미 다 같이 돌아갔거나 아니면 그들 또한 새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모양이다, 라고. 아키라는 생각했다. 반조가 다시 시야에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그는 이 식사 자리에 끼지 않을 것이다. 아키라는 반조를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으므로 그런 결론을 내렸다. 그럼 나도 여기서 나갈 수는 없는 거겠지? 유약한 정신머리는 결국 자신이 앉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에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그가 온통 풀과 꽃으로 치장된 의자에 앉은 뒤에서야 그 많은 사람들도 파도타기 하듯이 순서대로 착석했다. 아키라로서는 사양하고 싶은 관심이었다. 자신은,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걸 뼛속까지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키라는 착실하게 수저를 두 손으로 쥐어 음식을 썰어냈다. 어떻게 썰린지도 모를 음식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을 때 아키라는 고요하게 침잠하는 눈동자로 빈자리를 응시했다. 반조가 보고 싶었다. 저 자리에 반조가 와줬으면 좋겠다. 나는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자리에 반조가 함께해 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고, 내가 이러고 있는 모습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 나를 이곳에서…….
“여기요.”
“……뭐예요?”
“전통이에요. 행운을 가져다주거든요. 통째로 먹어요. 꼬리까지 전부 다.”
“뭐, 뭐라고…… 싫어요.”
무언가의 물고기로 보이는 음식을 가져온 여자가 억지로 그걸 아키라의 코앞까지 가져갔다. 죽은 물고기가 가까워지자 그 동그랗게 뜨인 채로 시체가 된 눈동자가 잘 보였는데, 아키라는 그때 느껴진 비린내를 참지 못했다. 코를 찌르는 꽃내음과 생선 비린내에 순간적으로 감정이 욱해진 아키라는 “싫다고 했잖아!” 하며 가까이 다가온 팔을 쳐냈다. 덕분에 그 물고기는 바닥으로 추락했고 아쉬워하는 야유 소리와 함께 그 뒤로 잠깐 정적이 흘렀다. 입안에 들어온 적도 없는 비린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아 잠깐 숨을 몰아쉬던 아키라가 천천히 땅에 처박혔던 눈동자를 들어 그들을 응시했다. “어, 아…….” 실수한 걸까? 순간적으로 몰려온 긴장감에 얼빠진 소리를 내자, 언제 조용했냐는 듯이 그들이 다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5월의 왕을 위하여, 건배!”
아, 일제히 잔을 들고 건배를 외치며 액체를 쭉 들이켰다. 아키라도 마셔야만 했다. 저 혼자만 마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이 마을은, 모든 심상을 공유하고 있었으므로……. 텅 비어버린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자 가장 가까이에 앉은 사람이 팔을 붙잡으며 물어왔다. “이제 우린 가족인 거죠?” “저와 당신은 가족이에요. 다 함께요.” “공동체인 거죠. 모두의 일부가 되는 거예요.”
가족, 공동체, 일부.
아키라는 평생 가져본 적 없는 단어들이 식사시간 내내 흘러나왔다. 그러나 호르가에 있는 사람들 중 아키라를 가장 잘 아는 반조는 그 자리에 없었으므로, 그 말을 듣는 아키라가 어떤 심상이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반조는 사람들이 몰려간 방향과 반대로 걸었다. 지난 며칠간 살펴본 결과, 호르가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식사를 할 때만큼은 다 같이 모여있었다. 중간에 먼저 자리를 이탈하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식사가 시작되는 첫 순간에는 한 사람도 빠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신 나간 듯한 마을을 살펴보기엔 지금이 가장 적정함을 깨닫고 걸음을 옮겼다. 그 중심에 아키라가 서있을 거란 사실이 거슬리긴 했다. 이 미묘한 거슬림이 어디로부터 시작됐는지도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아키라가 받을만한 대접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확신하기엔 아키라를 폭풍이 가장 먼저 몰아치는 저택 안에 버리고 떠났던 날과는 다른 거슬림이었다.
시야에서 사람들이 사라진 이후 반조는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끄트머리를 가볍게 물고 있는 채로 라이터의 불을 켜 빨아들인다. 내쉬는 숨에 옅은 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진다. 이 마을은 이상한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대외적으론 헛간이나 창고처럼 보이는 곳도 어쩌면 해골 몇 개를 돌탑처럼 쌓아 올린 공간일지도 모른다는 기묘한 확신이 들었다. 반조는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던 외부인들을 떠올렸다. 아키라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으나 그들의 모습은 눈을 홉뜨고 살펴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옷을 갈아입었나 싶었는데 그마저도 아니었다. 아키라나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면식 없는 사람이기에 따로 통보하고 떠날 필요도 없겠다지만……. 차츰차츰 한 명, 두 명씩 사라지는 과정은 본능적인 무언가를 짓누르기에 매우 걸맞았다. 느리게 한 손을 주머니에 꽂은 반조가 가까운 곳에서 눈에 띄는 오두막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오두막 안에서는 닭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마치 공포 영화의 도입부 같다고 생각했다. 흔하고, 진부한…… 시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B급 공포 영화. 오두막 손잡이 위로 손을 얹었을 때는 이 기분이 착각이 아님을 직감했다.
문이 열린다. 열린 안으로 들어가 다시 그 문을 닫았을 때, 반조는 앞서 서술된 문장을 일부 수정해야 한다는걸 깨닫는다. 이건 B급 공포 영화 보단, 뭐랄까……. 보는 이로 하여금 불쾌함과 끔찍함을 느끼게 만들어, 인간에게 심리적 공포와 불안을 느끼게 만드는.
그곳에는 허공에 매달린 인간이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등이 개복되어 바깥으로 꺼내어진 폐는 부풀어 오르고 꺼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숨을 쉬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시체라고 적기에는 확신이 없었으니 인간이 있었다고 적는다. 천장과 기동에 묶여 내려온 끈에 마치 예술 작품처럼 얽혀 허공에 붕 뜬 이는 자신이 기억하는 외지인 중 한 명이었다. 꽃이 만개하듯 활짝 펼쳐진 피부 안으로는 선홍빛 장기들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반조는 그 광경을 보고 짧은 두통을 느꼈다. 머리가 아픈 건 둘째치고 이 상황이 피곤하게 와닿았다. 이 마을에서의 일이 결코 원만하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오두막 바깥으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반조는 손가락에 들고 있던 담배를 땅에 떨어트리고 밟아 으스러트렸다. 곧 닫은 문이 다시금 열린다. 자이젠 반조는 찡그리듯 웃은 얼굴로 들어온 마을 사람을 마주했다. 그에게는 크게 저항할 의사가 없었다. 왜냐하면…….
호혜의 신을 기리는 오늘, 우리는 귀한 태양에 감사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아버지께 드리는 제물로, 오늘 아홉 목숨을 바칠 것입니다.
호르가는 받고, 다시 베풉니다.
새로운 피를 희생한 대가로 호르가의 피도 바칠 것입니다.
네 명의 새로운 피를 받았으니, 호르가에서 넷을 바칠 것이며─
왕이 선택한 한 명을 바치겠습니다.
아홉 모두 위대한 순환에서 죽고 부활할 것입니다.
노인의 목소리가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들릴 정도로 웅장하게 읊는 소리를, 아키라는 자리에 앉아 듣고 있었다. 멍하니 정신이 흐릿했지만 결코 약에 취하거나 중독된 것은 아니었다. 의식은 선명했으나 이 상황에 대한 아무런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징그러울 정도로 수많은 꽃들이 아키라의 머리며 몸을 덮고 있었다. 솔직히, 아키라는 꽃에 그다지 좋은 마음을 갖고 있지도 않아서 더더욱 힘이 빠지는 감각이었다……. 아홉 번째의 피는 전통대로 5월의 왕이 선택합니다. 미리 지정된 새로운 피와 특별히 추첨한 호르가인 중에서. 그들은 마치 룰렛을 돌리듯이 그들 중 한 명을 택하기로 했다. 낡고 오래된 기구에서 녹슨 철이 긁히는 소리와 함께 나무 공이 하나 굴러 나온다. 그건 꼭 어린 시절 아키라와 반조가 운 좋게 겪었던 기회와도 비슷했다. 별로 특별한 점도 없었던 고아원에서 우연찮게, 운이 좋아서 눈에 띄고, 폭풍의 언덕 위로 올라갔던 그때와 아주 흡사해서…….
알고 싶지도, 그렇게 관심도 없는 이의 이름이 호령된다. 흰옷을 입은 마을 사람 한 명이 영광이라는 얼굴로 앞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말을 이어가는 노인의 목소리에 아키라는 바닥을 바라보고 있던 눈동자를 끌어올렸다. 그 하얗고 알록달록한, 화사한 광경 속에서, 유일하게 색에 물들지 않고 새카만 색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 이가 다가온다. 아키라는 그의 이름을 알았다. 자이젠 반조. 이들이 마지막 후보입니다. 당신의 선택을 기다리겠습니다…….
아키라는 미묘하게 색이 다른 눈동자로 반조를 응시했다. 아주 오랜 시간 그의 이름을 앓았다. 자신의 삶의 전반에 반조가 없는 순간은 전부 괴로웠고 타오르는 땅 위를 걷듯이 발이 아팠으며 해소되지 않는 갈증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러나, 그가 곁에 있는 순간도 마냥 즐거울 수 없었다. 언제라도 그가 떠나버릴 것처럼 느껴져 하루 종일 불안감에 시달렸고 절규했다. 그가 잠깐이라도 등을 돌리면 그게 마지막으로 보는 모습이 될 것만 같아 벌어지는 잇새로 들끓는 듯한, 퇴색된 목소리를 낸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를 이곳에서, 지금, 포기해버리면, 아키라는 앞으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호르가의 사람들은 마치 모든 감정을 공유하듯이 굴었고 자신의 절규와 비명에도 함께 스러져 울어줄 것만 같았다. 자이젠 반조는 자신에게 해줄 수 없는…… 아니, 해주지 않는. 지금도 그렇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를 정도로 평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금빛의 선명한 눈동자. 자신을 믿는지, 믿지 않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저항하지 않는 태도. 지나온 시간들이 비참했던 만큼 아키라는 간혹 이러한 생각을 하곤 했다.
차라리 그를 인생에서 아예 단절시킨다면 앞으로의 삶이 회색으로 물들지언정 괴롭진 않을지도 몰라…….
아키라는 수없이 많은 대화 속에서 평범함과 잔잔한 일상을 추구했다. 특출난 점도 없고, 불안할 일도 없고, 무서울 날이 없으며, 지금보다 훨씬 연한 고통과 힘든 순간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나 연인이 있는 삶. 웃기지도 않아, 네 삶은 이따위면서……. 그런 말이 어울리지 않는 삶 말이다. 이 자리에서 그를 없애고 이들 속에 속하게 된다면 바라던 대로 되겠지. 아키라는…… 푸른 잔디 위로 펼쳐진 새하얀 사람들을 전부 시야에서 배척하고 그를 응시했다. 그런 잔잔하고 안온한 삶이, 어쩌면 곧. 어쩌면, 당장 한 시간 뒤에라도─.
호르가의 주민들이 이미 색 바랜 시체들을 가지고 노란색, 삼각형의 오두막 안으로 들어섰다. 아키라는 한 번도 그 안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선택받은 영역이라고 하며 들어가는 것을 아무도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애초에 허락했어도 별로 관심이 없었을지 모른다. 그들은 죽은 시체들을 그 성역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지푸라기 더미 위에 앉혀둔다. 앉혀둔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시체가 되어 늘어진 몸을 걸쳐두는 모습에 가깝겠지. 절벽에서 떨어져 두개골이 박살 났던 노인과, 잘못 망가져 거대한 나무망치에 으스러진 노인까지 전부 그 안에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5월의 왕이 선택한 피가 들어선다. 거대한 짐승의 육신 안에 박제되듯 들어간 이가 가운데에 앉힌다. 그렇게 되는 과정을 아무도 무어라 반발하거나 역겨워하지 않았다. 호르가의 사람들에게 그건 퍽 당연한 일처럼 보였다. 어린아이들마저 이 일을 매우 당연한 관례처럼, 살면서 한 번은 거쳐야 하는 풍습처럼…….
강하고 두려운 짐승이여. 너로 하여금, 우리의 부정한 기운을 정화하노라. 너를 가장 깊은 잠으로 추방하노니, 그곳에서 너의 사악함을 되돌아보고 반성할지어다. 마치 성경처럼 읊는 목소리와 함께 횃불을 든 이들이 안으로 들어선다. 그들은 타기 좋은 지푸라기 위로 횃불을 가져간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성역은 하나의 불꽃이 되어가고 있었다. 등 뒤에 서있는 이들이 합창하듯 노래를 불렀다. 성가대가 부르는 노래와 흡사하였다. 옮겨진 불꽃은 더더욱 몸집을 부풀렸다. 성역 안에 있는 모든 것에 자신의 존재를 내세우며 집어삼킨다. ─곧 누구의 목소리인지 모를 비명이 터져 나왔고, 합창은 곧 비명을 바뀌었다. 그들은 몸을 뒤틀고 털어대며 작열하는 화마 속의 고통을 모두 함께 나누었다. 개나리처럼 밝은 노란색으로 존재감을 내세우던 삼각형의 건물은 거대한 불꽃이 되어 허공으로 연기를 뱉어낸다. 90년에 한 번, 9일간의 축제. 그는 선택받았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왜 그런 선택을 했어?”
“…….”
“…….”
“내가 뭘 원하는지…… 그리고, 뭘 원했는지. 이제서야 정확하게 알게 됐거든.”
“…….”
“그러니까 이제…… 괜찮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 수 있게 됐으니까.”
흰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렸고, 그 덕분에 시야에는 옅은 미소가 들어왔다. 수줍게 웃는 얼굴은 꼭 첫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보였고, 상황과 조합하여 본다면 역겹게 보이기도 했다. 듣는 이는 느리게 한숨처럼 헛웃음을 뱉어낸다. 하.
“아키라, 넌…… 제정신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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