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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ernal Affairs>

  • 작성자 사진: Camilro
    Camilro
  • 2023년 9월 5일
  • 1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3년 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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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lro


<Infernal Affairs>

by Andrew Lau, Alan Mak

Film Noir / Italy / 2023 / 151min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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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로 도스탈리티는 경찰이 되고 싶었다. 악을 무찌르는 정의 같은 건 어린애의 치기 어린 환상에 가까울지라도, 세상에 좋은 일을 행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싶었다. 그는 돌아갈 자리가 없다. 서로를 패밀리라고 부르며 으쓱이는 무뢰배들이 망가트리고 부순 그의 고향은 이미 번쩍거리는 환락가와 카지노가 점령한지 오래였다. 두 번째 고향을 지워낸 건 자의로 저지른 일이었다. 규율을 어기는 자는 퇴교다. 저런 낙오자가 되고 싶은가! 엄밀히 따진다면 고작 경찰 학교의 신입생이었던 그는 거부할 수 없는 상부의 지령을 따른 것뿐이지만, 완고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남자는 한사코 결정에 들어간 자신의 지분을 회피하는 건 스스로 용납할 수 없다고 여겼다. 어쩌면 그게 바로 그의 생존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가족도 연고도 없는 간편한 희생양을 골라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무고한 자에게 총을 겨누고 깡패들 사이에 섞여 주먹을 휘두르면서, 입안에 고인 피를 뱉고 하얀 가루를 구분하고 팔아넘기고 맛보고, 프락치를 잡아 시멘트에 담그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남는 비결 말이다.

 “다들 널 부러워해. 보스가 이렇게 신임하는 자는 10년 만에 처음이라나. 비결이라도 있어? 혼자 쓰지 말고 좀 알려줘.”

 “돈께서 날 신뢰하는 만큼 그에 보답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쟝.”

 네로는 뒷골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우직한 답변을 하며 거래 장소로 들어선다. 3년간 함께해온 동료가 옆에서 몸수색을 받으며 투덜거린다.

 “그건 뻔한 이야기잖아. 치사하게 굴기는.”

 가져다바친 여자 혹은 정보와 같은 요령. 쟝은 그런 종류의 잡기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네로 도스탈리티라는 남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다. 하물며 네로 자신마저 어쩌다가 본인이 여기까지 도달하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처음 살인을 경험하고 핼쑥해진 낯이나 민간인에게 가해지는 서투른 협박을 본 조직원들은 모두 ‘저 녀석 얼마나 버틸까?’ 내기 카테고리에 네로를 첫 순번으로 넣고는 했다. 헛구역질을 하는 20살의 청년을 보면 영 뒷세계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으니. 이제 와서야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그 하나로, 완전히 노련해졌지만.

 오늘은 멕시코 마약상과 거래를 트는 날이다. 그리고 이 판을 떠날 찬스다. 파스칼 국장은 1년만 더, 1년만 더를 늘어놓으며 순진하던 네로의 청춘을 한세월이나 쓰레기통에 처박았지만, 이번만큼은 고집을 부려서라도 돌아가겠다고 결심했다. 그의 진정한 신분을 알고 있던 또 다른 사람인 교장이 한 달 전 타계하며 심경의 변화라도 온 것일까? 네로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은퇴하고 싶어졌다. 강한 책임감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지만, 국장도 부정할 수 없을 성과를 내놓는다면 이번에는 마침내 끝을 볼 수 있으리라. 그렇게 다짐하고 싶었으나 그의 내면은 그럴 일은 없다며 조소했다. 취미가 요리라며? 그 말과 함께 와인 오프너를 선물한 국장이 쉽게 네로를 놓아줄 리 없다고.

 “네로, 이쪽으로.”

 “알겠습니다, 돈.”

 서툰 이탈리아어로 Ciao를 연신 뱉어내던 마약상들이 껄껄 웃으며 돌돌 말린 담뱃잎을 건넨다. 친분을 나누는 돈 부온델몬티와 멕시코인들이 한눈에 보이는 자리, 구석 테이블에 앉은 네로는 포장을 찢어 하얀 가루를 털어낸 후 곱게 빻았다. 후각으로 마약의 품질을 구분하는 재능이 있는 경찰이라니, 몇 년 전 그 사실을 알게 된 네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오묘한 표정을 지었더랬다. 그 능력이 신임을 쌓는 데에 어떤 큰 역할을 했더라도 그런 자질은 필요치 않다고 여기고 있다, 여전히.

 “……최상품입니다.”

 네로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인자하게 주름이 진 얼굴로 너털웃음을 터트린 3대 부온델몬티가 새로운 거래처의 어깨를 두드렸다. 신호를 보내면 남은 물량을 받기 위해 조직원이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고, 경찰은 그걸 쫓으면 될 것이다. 묵묵하게 목례를 건넨 다음 “저 친구는 원래 좀 과묵해. 입이 무거운 게 장점이지.” 뒤로 물러나 창가에 선다. 바깥의 동태를 확인하는 척 유리창을 두드린다. 톡, 톡톡, 톡.

 네로가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서 자동차가 떠난다. 국장은 그의 몫을 할 테니 네로 도스탈리티 역시 자신이 수행해야 할 의무를 다하기로 한다. 지위가 올라갈수록 입에 추를 다는지 선후관계가 반대인지는 모를 일이나 정보를 캐내려면 바닥으로 향하는 게 더 낫다. 중요치 않은 데이터의 함량이 늘어나는 건 단점이지만 거래가 거의 성립된 지금, 졸개들은 긴장이 풀려 있을 것이다. 네로는 떼를 지어 스페인어로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떠들어대는 무리를 발견하고 그 옆에 녹아들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척 고개를 갸웃하고 지포라이터의 뚜껑을 열면, 희미한 기름 냄새와 함께 주홍색 불꽃이 솟는다. 조용히 담배를 태우는 조직원이 스페인 출신인 줄은 상상도 못한 멕시코인들은 와르르 몰려들어 골목을 온갖 말로 채우기 시작한다. 담뱃재를 날리며 흰 연기를 뿜어내고 있자면 귀에 선명하게 꽂히는 소리가 있다.

 “이번 거래 끝나면 우리한테도 뭐 좀 떨어지겠지?”

 “그러면 좋겠다. 항구 간 녀석들만 배불리는 거 아냐?”

 “그 자식들도 바닷바람 맞으면서 존나 대기하겠지. 옆에 저 녀석 있으니까 입 조심해.”

 “뭐 어때, 알아듣지도 못할 텐데.”

 네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양 타들어간 토막을 떨어트려 발뒤꿈치로 비벼 끈다. 신중하게 불씨를 꺼트리고 끄응, 하는 소리와 함께 기지개를 켠다. 다시 건물 안으로 향하는 등 뒤에서 왁자지껄한 웃음이 흩어진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로 돌아가 유리를 타고 흐르는 빗줄기를 응시한다. 흐려지는 창밖이 네온사인으로 반짝였다. 톡톡, 톡. P-O-R-T 자신에게도 들리지 않는 희미한 두드림이었으나 악당을 잡아 일망타진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파스칼 국장은 선명히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정확한 항구의 위치를 간결하게 전한다. 이제 전부 해결된 걸까? 긴장을 놓지 않은 채 은근히 실내의 기색을 살피고 있을 때였다.

 “젠장, 당장 그만두라고 해!”

 진노한 돈 부온델몬티가 책상을 쿵 친다. 지팡이를 내리찍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내부가 소란해진다. 삐삑, 삑. 흉터가 가득한 손에서 작은 휴대폰이 울린다. 그 안에 있는 게 어떤 내용이길래? 네로는 본능적으로 답을 내렸다. 스파이인 자신이 조직의 혈관에 침투해 있는 것처럼, 경찰청 어딘가에도 부온델몬티의 손이 뻗어있으리라고. 그리고 마약 검거 작전에 참여해 자신을 엿먹였을 것이다. 핵심 프로젝트의 일원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신뢰를 쌓아가면서, 누구도 믿지 못하고 모두를 의심해야 하는 외줄타기를 이어가면서. 그 살얼음판에서 용케 미끄러지지 않고 고독한 길을 걸었을 테다.

 젠장, 텄다. 바다에 쏟아진 마약은 모조리 녹아내릴 테고 쳐들어 올 경찰은 결국 소득 없이 이 사회를 좀먹는 마피아를 방면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은,

 모든 게 망쳐졌음에도 분노도 허탈함도 아닌 이질적인 동질감에 전율하는 네로에게 구둣발이 다가온다. 모두가 묵언한다. 살벌한 긴장감이 척추를 타고 올라 뇌수를 얼린다. 그는 바로 앞까지 도달한 의혹의 눈길에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태연한 얼굴로 대응한다.

쾅!

 “크읍.”

 “……실례했네. 쥐새끼 우는 소리에 내가 과민했던 모양이야.”

 조직의 유일한 이방인이 ─정통 이탈리아노가 아니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오른팔에 감은 깁스를 내리친 돈은 뱀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외부 소통의 흔적을 찾았으나 부서진 석고 안에는 여즉 상처가 가시지 않은 맨살밖에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이해하겠지? 그 뜻을 담아 어깨를 두드린다. 네로는 순종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감히 이곳까지 기어들어왔단 말이군. 나의 집과 대들보를 갉아먹으며 배를 불리는 쥐 따위가. 잘도.”

 낡은 건물을 포위한 경찰차에서 연신 사이렌이 울리고, 수갑이 차이기 직전임에도 부온델몬티의 장은 10평 남짓한 공간을 느긋한 걸음으로 한 바퀴 돈다. 속내를 꿰뚫어보는 것처럼 매서운 눈이 모든 자의 낯을 핥듯이 관찰한다. 입에 문 시가를 여유롭게 질겅인다. 에스프레소에 올려진 크림마냥 부드러운 경고는 실로 위협적이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기어오르는 개새끼들의 목을 쳐왔고, 몸을 숨긴 쥐새끼를 노리는 포식자였다. 공들여 닦아주는 총신이 나이가 들었다고 녹슬 리 없다.

 “다들 알다시피 나는 거짓말을 좋아하지 않아. 맹세하지. 부온델몬티는 믿음을 배반한 개자식을 편하게 보내주지 않는다. 그 녀석은 오늘부터 덜덜 떨며 조금이나마 빨리 뒤지기를 바라야 할 거야. 차라리 제 머릿속에 총알을 박아넣는 게 나을 거다.”

 “…….”

 “뭔가? 다들 웃게. 실로 재미있는 이야기지 않나.”


 하, 하! 경찰들이 총을 잡고 들이닥쳤을 때는 모두가 박수를 치며 웃고 있었다. 기이한 장면이었다.

-

 말이 없고, 다소 딱딱하고, 요령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리만치 성실한 사람. 살바토레는 그를 처음 본 순간 여러모로 자신과는 반대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네로 도스탈리티. 이 거리를 장악한 부온델몬티의 간부 중 하나. 성은 아버지의 것이랬는데,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라 그 진의는 아무도 몰랐다. 드문 일이다. 부온델몬티의 보스가 타지의 인간을 신용하는 것은.

 “그러니까 저 인간이 보기 보다 머리가 좋다고 말하는 거야.”

 “흐음.”

 오후의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동료가 말했다. 같은 특수상황부에 배속된 남자였다.

 “보스의 눈에 들기 위해서 남들보다 배는 고생을 해야 했을 테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냈잖아. 천성이지. 성실함이 수수한 재능인 것 같아도 오히려 정답으로 향하는 지름길이 되는 경우도 많거든.”

 살바토레는 초콜릿이 든 크루아상의 부스러기를 입가에서 떼내며 심문실의 특수 유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자리에 등을 꼿꼿이 세운 채 앉아 있는 것은 붉은 머리의 남자, 도스탈리티.

 부온델몬티의 일처리는 솜씨가 참 깔끔했다. 증거가 될 것 같다면 남겨두지 않았다. 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리하여 그들이 지나간 곳에는 죽음과 재만 남았다. 신뢰하는 패밀리를 제외하면 그랬다. 쉽게 예를 들자면, 눈앞에 앉아 있는 이 남자는 값어치가 있는 증인이라는 소리다. 부온델몬티가 저지른 수많은 범죄에 대해 입을 열게 할 수만 있다면, 청장은 정말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은 기색이었다.

 그러나 안 되지. 입가에 묻은 초콜릿을 부드럽게 닦아내며 살바토레는 생각했다. 저 남자가 지금 잡혀들어가서야 부온델몬티에는 필시 굉장한 곤욕이다. 무슨 생각 해? 곁에 있던 동료가 자신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 같지 않자 물어왔지만 살바토레는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투명한 심문실 유리 너머의 도스탈리티는 수갑을 찬 채로, 아무 말 없이 탁자를 보며 앉아 있었다. 거친 심문으로 얼굴이 반쯤 뭉개져 있었는데도. 그 모습조차도 지독히 요령이 없고 성실해 보인다고, 살바토레는 생각한다.

 “우선은 이송할 건가 봐. 간만에 잡은 거물의 꼬리니까, 윗선에서도 소중하게 취급하고 싶은 모양이지.”

 “어디로?”

 “특수상황부 심문실보다는 미더운 곳이겠지. 어쩌면 본부로 갈지도 모르고…”

 “겁쟁이들. 언제 이송한대?”

 “이르면 내일 아침.”

 동료와의 잔업 같은 대답이 짤막하게 이어지고, 살바토레는 잔을 들고 일어난다.

 “어쩌려고?”

 “입을 안 열잖아.”

 “수 있어?”

 “저런 사람일수록 고전적인 방법이 먹히는 법이지. 레코드 꺼줘. 내가 설득해서 뭐라도 정보를 얻어올 테니까.”

 “뭐? 네가 변호사도 아니고… 일처리 그렇게는 안 되는 거 알잖아.”

 “그러니까 그 부분을 어떻게든 해달라는 거야. 이대로라면 특수상황부의 자존심이 어떻게 되겠어?”

 동료는 투덜대면서도 그 사실에 순응한 듯 순순히 폐쇄회로를 중지시킨다. 살바토레는 바닥에 검은 커피 자국이 말라붙은 잔을 테이블 위에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는다. 특수상황부의 자존심, 이라니 웃기고 있네. 무엇보다도 저 남자가 뭔가 불어버리면, ‘아버님’도 곤란하실 테고. 무언가를 털어놓을 것 같은 인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직에 쥐새끼가 숨어든 것 같다는 얘기로 부온델몬티의 분위기가 안 좋던 참이었다. 그 와중에 중요한 간부까지 잡혀들어가면 아버님의 위신이 어찌 되겠는가.

 살바토레는 심문실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보통 문의 배로 묵직한 철문이 닫히자 방 안의 압력이 높아지고, 심문실 안의 공기도 묵직하게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네로 도스탈리티.”

 남자가 얼굴을 들었다. 무표정한 얼굴에 상처가 가득했다. 그러나 왼뺨에 난 상처만은 꽤 오래전에 난 듯했다. 칼로 베인 것처럼 예리한 상처였으나, 벤 사람이 주저했는지 깊게 파여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신 사건에 배속된 살바토레라고 해. 잘 부탁하지.”

 “….”

 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살바토레가 악수를 청하듯이 손을 내밀었지만, 그 손을 붙잡는 일도 없었다. 꼭 고양이 같은 남자, 라고 살바토레는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살바토레는 미소 지었다. 과연, 부온델몬티의 간부쯤 되면 쉽사리 승복의 뜻을 보이지 않으리라.

 살바토레는 왼손 검지에 끼고 다니던 반지를 슬쩍 벗었다. 서 안에서는 절대로 벗지 않는 반지였다. 혹자는 그 반지의 의미를 궁금해하긴 했지만, 단순한 악세사리라고 설명하면 다들 대체로 호기심이 사그라들곤 했지. 드러난 손가락 아래에는 반지의 안쪽에 눌려 부온델몬티의 인장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도스탈리티의 눈이 커다래지고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살바토레는 놓치지 않았다.

 “당신…”

 “쉿.”

 살바토레는 당황해 황급히 입을 열려는 도스탈리티를 향해 입술 위에 손가락을 세워 보인다. 떨리던 눈동자가 몇 번 구르더니 다시 침착해지고, 무엇을 원하냐는 듯 다시 이쪽을 바라본다.

 “괜찮아. 지금 폐쇄회로 꺼졌어. 보이지?”

 살바토레는 심문실 구석에서 붉은빛을 깜빡이며 상황을 녹화하던 카메라를 가리킨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는 듯 카메라는 어떤 빛도 내지 않고 고요하다.

 “그래도 밖에서 특수상황부 동료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침착하고 수상하지 않게 움직여.”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잇새로 미끄러지듯이 말을 건넨다. 도스탈리티는 무언가 납득했다는 양 이쪽을 노려본다. 노려본다기보다는, 협력하겠다는 뜻에 가까운 눈빛이었지만 그 사실은 살바토레가 아니라면 눈치채지 못하리라. 살바토레가 프로필이 적힌 서류로 시선을 떨구며 느릿하게 웃는다.

 “네로 도스탈리티. 이름이 멋지군 그래.”

 “필요한 대화만 하지.”

 도스탈리티는 아직 경계를 풀지 않았는지 매서운 눈이었다. 물론 살바토레는 그런 날카로운 반응에 기가 죽을 치가 아니기는 했다.

 “요즘 서나 조직이나 흉흉하더군. 쥐새끼가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아나?”

 “모르는 바는 아니지.”

 도스탈리티는 무엇인가를 반추하듯 시선을 떨구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대답을 들으며 살바토레는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조직의 쥐새끼는 모르지만 적어도 특수상황부의 쥐새끼는 실존해. 이런 형태로. 내가 서에서 유능한 취급을 받으며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도 조직 내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를 교묘하게 이용했기 때문이거든. 그러니까… 명석한 당신이라면 이게 무슨 말인지 알지?”

 “풀려나고 싶으면 뭐라도 물어다 바치라는 위협으로 들리는데.”

 “위협이 아니라 상생이야.”

 살바토레는 꼬집듯이 그 말을 정정했다.

 “난 부온델몬티에 치명적인 정보를 바라는 게 아니니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당신도 간부라면. 3대께서도 그 일을 바라실 테고.”

 도스탈리티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버석이는 입술을 열었다. 조금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알았어.”

-

 심문실에서의 불편한 만남 이후, 도스탈리티는 사법 거래로 풀려났다. 살바토레의 열띤 설득이 효과가 있었다는 보기 좋은 명분과 함께. 도스탈리티가 내놓은 정보로 특수상황부는 소소한 성과를 올렸고, 청장도 만족스러운 표정은 아니었지만 일단 이 정도 성과로 참아주기로 한 모양인지 조용했다.

 “당신 무모해.”

 “내가?”

 신문을 한 손에 들고 선글라스를 낀 채로, 살바토레가 대꾸한다. 카페의 차양 아래 일자로 놓인 의자 옆 칸에는 네로 도스탈리티가 앉아 있었다. 특수상황부에서는 도스탈리티를 미끼로 쓰기로 작정한 듯, 살바토레에게 도스탈리티의 감시를 명했다. 무언가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바로 보고하라는 명령이었다. 하필 하고 많은 부원들 중 자신이 감시를 맡게 된 우연을 살바토레는 유쾌하게 웃어넘겼다.

 그리하여 기묘한 공존이 이어졌다. 살바토레는 그를 감시한다는 명목하에 하루 종일 공원이나 카페에서 단둘이 죽치고 앉아있곤 했다.

 “부온델몬티 안에도 스파이가 있다는 사실 알고 있었잖아. 내가 그 스파이면 어쩌려고 그 반지를 벗었지?”

 대답을 고민하듯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아니, 살바토레에게는 대답이 결정되어 있었다. 다만 어디까지 얘기할지를 고민한 것뿐이지.

 “당신이 솔직해 보여서.”

 살바토레는 손 깍지를 끼고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도스탈리티를 바라본다. 입가에는 예의 여유로운 미소가 걸쳐져 있었다.

 “당신은 왠지 남을 속이는 일 같은 것 못할 거 같아.”

 “그렇다면 성공했네.”

 도스탈리티도 지지 않고 장난스럽게 맞받아친다. 요 몇 달간 감시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감시를 이어가며 두 사람에게는 유대 같은 것이 생겨나 있었다.

 “난 사실 부온델몬티를 무너뜨리기 위해 경찰 쪽에서 보낸 첩자거든.”

 “오.”

 짧은 휘파람. 살바토레의 키득거림이 이어진다.

 “그럼 위장경찰과 스파이가 지금 대낮에 카페에서 이러고 앉아있는 거야?”

 “그렇게 된 셈이지.”

 “코미디 같네.”

 “시청률은 잘 안 나올걸.”

 “능글맞은 구석이 있어, 당신.”

 살바토레는 그렇게 대꾸하며 에스프레소 잔 바닥의 설탕을 할짝였다.

 “그럼 장르 바꾸자.”

 “뭘로?”

 “로맨스 스릴러.”

 도스탈리티의 멱살이 잡히고, 살바토레가 설탕이 묻은 입술을 기울인다. 입술과 입술, 혀와 혀. 도스탈리티의 예상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정중하고 유치한 키스에서는 달콤한 설탕의 맛이 났다. 뭐, 뭣. 도스탈리티의 입술 사이로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살바토레는 놓치지 않았다. 도스탈리티의 당황 따위는 살바토레의 키득이는 웃음소리 사이에 전부 묻혀 사라진다. 내기 할래? 치기 어린 목소리가 달콤하게 속삭였다.

 “먼저 반하는 쪽이 지는 걸로 하는 거 어때? 먼저 상대를 사랑하게 되어서 배신할 수 없게 되면, 스파이로서는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는 거잖아.”

 입술이 떨어지고, 어이없이 멍한 표정으로 한참을 마른 세수만 벅벅이던 도스탈리티가 내놓은 대답은 한마디뿐이었다.

 “……당신 무모해.”

 “하하!”

 살바토레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하오의 햇살 아래 부서진다.

-

 이른 아침부터 까마귀들이 떼 지어 태양 가까이 날아올랐다. 내리쬐는 나폴리의 여름 햇살을 받은 파도의 포말이 잘게 빛났다. 네로와 살바토레는 근처 가게에서 포장한 라자냐를 가운데 두고 인적 없는 부둣가에 앉았다. 조직의 눈을 피한 만남이었기에 일부러 사람의 접근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로 골랐다. 맥주 캔을 따면 청량한 소리가 거품과 함께 올라온다. 시원한 맥주를 몇 모금 삼킨 살바토레는 호탕하게 캔을 내려놓았다.

 “평소보다 음식이 짜다니까.”

 “주방장이 소금과 설탕을 착각하기라도 한 모양이지. 그냥 먹지 그래, 미식가.”

 “누가 안 먹는대? 짭짤한 게 안주로 삼기에는 딱이로군.”

 라구 소스를 듬뿍 묻힌 면을 입에 쏙 넣은 살바토레가 볼을 우물거린다. 네로의 혀가 포크의 납작한 면을 핥았다. 고개를 모로 기울이는 모습에 그를 응시하던 살바토레가 입꼬리를 올린다. 잔잔한 대화가 이어진다.

 “잘 모르겠는데.”

 “당신은 성격만큼 미각도 둔하네.”

 “예전에는 아니었어. 나 요리도 제법 하는데.”

 “그런데 지금은 왜?”

 “알고 싶어?”

 “오…, 내가 화제를 잘못 꺼낸 모양이군. 우리 다른 이야기 할까?”

 키득거리며 블랙 조크를 주고받은 두 사람은 공기에 섞인 짠 내음을 들이마신다. 경찰과 조직원, 혹은 조직원과 조직원, 그것도 아니면 경찰과 경찰 조합인 비밀스러운 회담은 해가 하늘의 중앙에 오르기 전에 끝이 날 것이다. 시간을 가늠하던 살바토레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네로와의 만남은 왜 이토록 순식간에 지나버리는 걸까?

 “있잖아, 당신은 어쩌다가 조직에 들어왔어?”

 “역시 경찰 스파이라는 말 하나도 안 믿은 거지?”

 “하하.”

 알 만하다는 얼굴로 픽 웃은 네로는 더 말을 얹는 대신 질문의 대답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기야 경찰의 첩자가 맞는 주제에 본인이 스파이라고 여러 근거를 들어 주장하는 게 더 웃긴 일이다.

 “돌아갈 곳이 없어서, 라는 게 가장 명확하려나.”

 그는 언제나 자신의 길에 책임을 지고자 노력했지만 이리저리 떠밀린 네로 도스탈리티의 인생에 떨어진 무수한 재난들이 전부 그의 선택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고향을 떠나고, 경찰에 스파이까지. 그 과정에서 당한 배신은 셀 수 없었고 네로의 우직함은 홀로 선 그에게 무수한 흉터를 남겼다. 그는 벌겋게 벼려낸 쇳덩어리와 비슷한 자질의 소유자였으나, 부러지지 않는다고 해서 상처 입지 않는 건 아니다. 살바토레가 중얼거린다. 당신 지쳤어. 그리고 혼잣말처럼 속삭인다.

 “어쩌면 나 역시 그럴지도 몰라…….”

 네로는 그날에 머무르고 싶었다. 경찰도 조직도, 정의도 악도, 생각할 거라고는 무엇도 없는 평화로운 시간에서 영원한 쳇바퀴를 돌리고 싶었다. 토토. 그 짧고 귀여운 애칭이 어울리지 않는 작은 남자에게 패배하고 말았으므로.

 햇볕을 머금은 밀색 머리카락, 한쪽 색이 바랜 눈동자, 콧잔등의 귀여운 주근깨.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터와 조금 도톰한 입술, 오만한 악당 같은 웃음과 상기된 뺨, 깊은 이해를 담고 자신을 담는 그 눈.

 당신은 왜 가끔 울 것 같은 표정을 할까? 나는 그 얼굴을 볼 때마다 포기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져.

 그에게 무엇을 포기하지 말라 요구하는지도 모른 채 막연한 소망을 한다. 비밀을 감추고 있는 나의 작은 겁쟁이. 난 어떻게 해도 당신을 싫어할 수 없어. 3대 부온델몬티는 죽었다. 부온델몬티의 손속에 지독하게 고문당한 국장의 시체가 벼락처럼 택시 위로 떨어지는 순간 깨닫는다. 이제 살바토레의 정체를 아는 유일한 자는 세상에 자신뿐임을.

 “당신은 내 최악이고, 난 당신을 사랑해.”

 네로는 웃었다. 시체도 온전히 남기지 못하는 방식으로 언제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해온 삶이었는데, 기어코 미련 하나를 세상에 남기고 말았다.

 사랑하는 나의 토토.

 만약 당신도 나와 같다면 우리 서로를 향해 겨눈 총구를 내리자.

 증오하는 대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자.

 우리에게 남은 게 손잡이가 허술한 냄비, 싸구려 에스프레스와 좁은 아파트와 플라스틱 테이블, 낡은 부엌으로 이루어진 인생일지라도.

 함께 새로운 출발선에 서서, 서로가 서로의 돌아올 곳이 되자.

 네로 도스탈리티는 화약도, 비린내도 섞이지 않은 그 바람을 자유라 명명한다.

 어쩌면 나는 당신보다 당신을 더 잘 알아. 당신은 나를 사랑하고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처음 만난 순간부터. 살바토레는 단 한 번도 사랑을 입에 담지 않았으나 네로는 진실로 확신했다.

 “있잖아. 나는 항상 당신 편이야.”

 살바토레는 떨리는 눈으로 네로를 관망했다. 겨눠진 총구가 그리는 자취를 더듬었다. 무너지는 토사를 입에 넣은 것처럼 숨이 막혔다. 가까스로 지탱해온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그의 모든 행로는 섬세하고 신중하게 이루어져야만 했다. 사람과 상황을 기민하게 살펴가며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은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알고 있었다. 그동안 봐온 모든 얼굴 중 가장 편안한 안색을 한 네로의 입이 열리면,


 “그러니 자유롭게…….”


 탕! 총성이 네로를 경찰로 남겨두었다.

-

 “세상에, 보스가 10년 전 후계자를 잠입시켰다는 건 과거의 허황된 뜬소문인 줄 알았는데! 퉷, 더러운 배신자 같으니. 위험한 상황이셨군요. 이제 안심하십쇼!”

 모든 미래가 저무는 건 이마에 박힌 총알 하나면 충분했다. 단 하나의 탄환이 죽음과 생을 갈라놓았다. 살바토레는 공을 세웠다는 사실에 들뜬 기색으로 재잘거리는 낯을 보고 나서야 작금의 현실을 인정했다. 네로를 미행한 게 분명하다. 수상해 보였겠지. 10년을 의심받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아까까지만 해도 굳어있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한다. 변수는 하나, 살바토레다.

 네로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든, 이젠 없다. 너무 늦어버렸다.

 “……자네, 쟝이라고 했나?”

 “기억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돌아오실 거죠? 그 세월을 잠입해 계셨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다른 녀석들도 알게 되면 혀를 내두를 거라고요.”

 “그래, 너 말고는 모르는 일이고…….”

 “옙, 하지만 걱정 마요. 우리는 패밀리 아닙니까. 제가 도와줄게요. 보스는 절 푸대접했지만 저도 꽤 쓸만합니다.”

 “그래, 잘 부탁하지.”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내려간다. 여섯 발의 총성이 더 울렸다. 그는 리볼버의 탄창을 모조리 비웠다.

-

무간지옥에 빠진 자는 죽지 않고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된다.

 동양의 불교에서 묘사하는 지옥이라고 했다. 그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동안 몇 번이나 그 문장을 읊조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했다. 부온델몬티의 간부가 아니라 경찰로서 죽기를 택한 것이다. 장례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10여 년에 가깝도록 위험한 잠복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낼 수 있었던 건 네로 도스탈리티 뿐이라고들 했다.

 보드카를 몇 잔이나 넘겼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뒤틀리는 속. 아니, 어쩌면 뒤틀리고 있는 것은 내장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살바토레는 빗방울이 미끄러져 선을 그리는 창 밖을 내다본다. 흐릿하고 어두운 하늘 때문에 유리창에는 자신이 비치고 있었다.

 그럼 나는 어떻지? 이어지는 자문.

 살바토레는 한 번도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 본 적이 없다. 오빠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밟았던 부온델몬티 저택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 오빠의 기묘한 죽음 이후 이어졌던, ‘살바토레가 되어 경찰에 잠입하라'는 명령. 그리고 그 명령을 내린 3대조차 죽어버린 지금, 살바토레는 완전히 길을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아니, 길이라면 있었지. 살바토레는 목눌하고 무뚝뚝하던 네로의 옆얼굴을 떠올렸다. 왠지 그 고지식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살바토레는 전혀 다른 자신을 상상하게 되곤 했다. 가족 같은 건 폐어촌에 버리고 왔노라며, 이제 가족이랄 것도 없다고 고백하는 그의 손을 붙잡고 말하고 싶었다. 그만두자고. 당신도 웃기는 건달 흉내 그만두고, 나는 부온델몬티의 인간이길 포기하고 어디론가 도망쳐버리자고. 이탈리아나 스페인은 위험하니까 조금 먼 곳으로. 아무도 우리를 알아보지 못할 곳으로. 예를 들어 있잖아, 뉴욕이라든지, 오타와라든지… 아니면 상해나 북경도 좋아. 그것도 아니면 세련된 도시 같은 곳이 아니어도 좋다. 흙먼지가 날리는, 새로운 소식이라고는 하루에 두 번 정류장에 섰다가 떠나는 버스뿐인 곳,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철저한 이방인으로 살자.

 그러나 간사한 마음은 한 번도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그가 어떤 인간인지 알면서도 그랬다. 그렇게 말했더라면, 너는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면서도. 그건 네로 도스탈리티를 믿지 못한 건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한 건지는 이제 와서는 알 수 없었다.

시체하고 악수하는 사람도 있나?

 3대, 그러니까 아버님께서 싸늘한 목소리로 국장을 부르고 경찰청을 나설 때 그 곁을 호위하던 당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기억한다. 부서진 깁스가 그날 거래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케 했다. 당신은 칼날 위를 걸어가는 것처럼 몹시도 지친 얼굴. 그리고 이쪽을 한번 흘긋, 쳐다보았었지. 살바토레와 마주친 눈에는 질척한 피로가 담겨 있었다. 그걸 보고 살바토레는 당장에라도 그의 손목을 잡고 도망치고 싶었다.

 “그럴 걸 그랬어.”

 혼잣말이다. 외창을 여전히 거센 빗발이 두드리고 있었다. 대답은 아무에게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네로 도스탈리티가 살아 있었다면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어깨를 으쓱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구석에서는 묘하게 능글맞을 때가 있었던 남자니까.

 그렇지만 이곳은 무간도. 지옥에서도 제일 낮고 비천한 곳. 아무리 바라도 떠난 이에게서 대답은 돌아올 리 없었다. 보드카의 병은 비어가고 밤은 길어진다. 살바토레는 어쩌면 당신을 떠나보낸 오늘 밤이 영원히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그리하여 영원히 후회하도록. 어쩐지 그 감각이 슬프다거나, 괴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살바토레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당신의 온기가 아직 현재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그 고통이 잠시 유예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싸우는 와중에는 눈이 파여도, 뼈가 부러져도 이상할 정도로 고통스럽지 않은 것과 같다는 사실을.

 그래, 네로 도스탈리티. 당신이 나의 지옥이야.

 내일이 되면 팔이 꺾이고 다리가 날아가는 듯한 괴로움이 틀림없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당신의 온기가 묻어 있는 오늘은 더 이상 없을 테니까.

 네로 도스탈리티는 마지막까지 누구에게도 살바토레가 스파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참으로 굳은 함구였다. 네로의 입장에서는 살바토레에게 활로를 열어준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살바토레의 생각은 달랐다. 차라리 스파이인 게 알려져서 당신과 함께 죽었더라면 이 밤이 영원히 이어지는 일도 없고, 당신의 온기가 영원히 사라질 일도 없고, 당신이 뜻했는지 아닌지조차 불확실한 유지를 이어나가야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우리의 영혼은 낯선 사람들 사이에 둥지를 틀고 영원히 자유로운 도망자로 살았을 텐데.

 비어버린 보드카 술잔 위로 후두둑, 비가 떨어진다. 한 쪽밖에 없는 눈에서도 빗방울은 쉽게 넘쳐 흘렀다. 보드카 1.5온스에 눈물을 1대시. 감상과 애도로 혼탁해진 보드카가 잔 밑바닥에 고였다.

 “정말 싫어, 당신 같은 남자…”

 눈물이 먼저, 그리고 그것을 뒤따르듯이 그제야 연약한 훌쩍임이 흘러나온다. 깊은 애정에는 네로 도스탈리티라는 이름이 붙었다. 살바토레의 영혼이 간신히 자리 잡은 최초이자 최후의 장소. 무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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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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