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inking of Ending Things>
- Scarlet Heart

- 2023년 9월 5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3년 9월 8일

Scarlet Heart
<I’m Thinking of Ending Things>
by Charlie Kaufman
Drama / USA / 2020 / 134min / 18+
“때로는 생각이 행동보다 진실과 현실에 가까워.” “말과 행동은 속여도 생각은 그럴 수 없거든.” 도로는 텅 비어 있다 주변은 고요하고 적막하다 예상보다 그렇다 볼 건 많지만 사람은 적고 빌딩과 주택도 별로 없다. 하늘, 나무, 들판, 울타리, 도로와 자갈 갓길……. *
*원작 인용
넷이서 둘러앉은 식탁에는 모자라거나 위태한 구석이 없어 보인다. 조금도. 가장자리에 자수 레이스가 달린 식탁보. 반듯하게 접힌 네 모서리. 수수한 양식의 화병과 새 작약. 세 개의 앞접시 위에는 원하거나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음식들이 올랐다. 버터에 절인 감자. 미트 로프. 딜 향이 많이 나는 피클. …… 속에 아직은 분홍색이 도는 미트로프에서 서서히 붉은 즙이 퍼진다. …… 서서히. …… 밀려오는 파도 내지는 한순간에 금그을 깊이를 잃은 호수의 형상으로. 나이프의 반짝임이 부드러운 살점 위로 선을 긋는다. 지금으로부터 몇 만년, 아니 몇 억년 전 하나의 대륙으로부터 잘려나간 땅들은 섬이 되어 산다지. 그러면 우리는? 우리는 어떻게 될까. 관계의 단면들, 어쩌면 상흔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밤. 창 밖으로는 눈보라가 심하다. 이런 날이 몇 번이고 있었던 것처럼. 아주 태연스럽게. 오래되어 보이는, 잘 관리된 커틀러리는 두 명에게 적당했다. 한 명쯤은 만족했을 테다.

“아버지는 나고 자란 고장의 기후처럼 부드러운 분이셨지.” 이런 한두 문장으로 생애를 정의하자면 공백은 극복할 수 없이 필연적이다. 그 탓이려나? 양순해 보이는 인상 속으로 배치된 이목구비가 제각각의 특징을 채 갖지 못하고 어렴풋하다. 형태의 세부는 흐릿하되 틀 속에 간직된 채였으니 어쩌면 충분하다. 장면 장면이 남기는 인상들. 희끗하니 일어난 필름 같은 왜곡. 진실이란 관념은 본디 순간의 압점에나 가깝다. 반면에 시간이란 막대한 연속이지. 한낱 인류의 지혜 따위론 그 유리된 틈을 영영 극복할 수 없을 거야. 우리, 젊은가? 늙어가고 있나? 나아가나? 맴돌고 있나? 이 순간 발자국으로부터 궤적의 본질을 가려낼 수 있겠니? 설령 어느 날 고된 증명을 거듭한 끝에 진주 같은 진실을 캐내게 된들, 이미 모든 단서들은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을 거야. 낡은 비늘로 떨어져 흔적일 뿐 더는 무엇도 담보하지 못하겠지. 오늘날에 조개껍질로 무엇을 사들일 수 없는 이치로. 아, 언제나 바닷가였어. 소금기 머금은 바람에 모든 건 쉬이 삭아갔지. 이것만은 잃어버리지 말자. 우리 세월 속 건져낸 가장 유력한 지문이다. ……. 어쩌면 우리라는 말을 너무 남용하지 않았나 싶기도. 닳지 않도록 해야 했는데. 강아지를 키웠던가 고양이를 키웠던가. 털 색은 어땠더라. 그런 것보다도 어느 성탄절에 밝혀 봉헌한 초가 노랗고 파란 색이었다던지. 밤늦게 들렀던 제과점의 풍경 따위가 지금은 선명하다.
집안의 환경은 언제나 잘 정리되어 있었어. 모든 옷은 반듯하게 풀을 먹여 다려진 채 내게 왔지. 무거운 기대 따위가 내걸린 순간이라고는 기억나지 않아. 나의 일들은 그럴 수밖에. 소독약 냄새가 나는 수건과 단 한 번도 차갑지 않았던 실내화. 집안 어딘가에는 반드시 지치는 일 없이 조명이 켜져 있었음을 기억해. 평화와 안녕이 깃들어 마땅한 집이라기보단 일종의 전쟁터 같기도 했어. 온전히 다른 누군가를 위해 분투하는 삶에 대해선 여전히 이해할 수 없네. 그들은 늘 병정처럼 서서 내 곁을 지켰는데……. 이제는 진술하기에 머뭇거리는구나. 내가 오늘 죽고 네가 우리의 모든 걸 사전으로 남기려 한다면 과연 어디까지 복원할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암녹색 벽지 정도는 변하지 않았던 거 같기도 하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
이제는 받는 것도 잊어버린 빚 같아, 전부. 서글프니? 네 선택이. 어렵니? 이 어긋남이. 그만둘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을까. 우리의 그날 짝 지어 춤추지 않았거나 내게 사다 줄 보석 구두 한 켤레가 모자랐더라면. 서로의 인력으로부터 충분히 벗어날 수 있는 궤도 즈음을 맴돌다 말았을까. 이제는 먼 일이야. 물에 푼 잉크를 돌려받을 수는 없지. 하여간 나는 여전히, 생각하고 있어. 끝나는 것들에 대해서. 끝낼까 해서. 네 끝에 대해서. 눈이 아주 내리는구나, 우리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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