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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Together>

  • 작성자 사진: Eternity
    Eternity
  • 2023년 9월 5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3년 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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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rnity


<Happy Together>

by Wong Kar-wai

Romance / Hong Kong / 1997 / 178min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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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복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시간이 돌아간다거나 하는 터무니없이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다음 날 떠오르는 해, 밤이면 그제야 숨통이 트인다는 듯 빛을 내는 달, 내리는 비와 돌아오는 계절 따위의 반복. 지긋지긋하다는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종류의 관계. 웨이톄린은 감히 생각한다. 마음이란 것은 언제나 돌아오기 마련이니 잠시 떠나는 것 정도야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므로 숨처럼 가볍게, 습관과 같은 말을 쏟아낸다.

 “우리 다시 시작해요.”

 그 말이 콴윙얀에게 어떻게 들리는 줄도 모르고서, 달려들면 그 또한 좋은 것이로구나 생각하며 약기운이 날아간 또렷한 눈으로 웃었다. 허락이 쉽다. 어려운 것은 삶뿐이다.

 시간은 너무 빠르게 삶을 스친다. 어린 날은 돌아오지 않고, 이제 청춘마저 쇠락의 길을 걷는다. 웨이톄린은 죽음이 두렵다.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 보지 않았으나, 영원불멸한 세계에서 홀로 떨어져나와 먼지가 되어 사그라진다는 사실은 때때로 제 몸을 송곳니로 꿰뚫기 위해 침을 질질 흘리는 광견병에 걸린 개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언젠가 암전될 극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것들을 가능한 많이, 깊이 즐겨 봐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런 후회 없는 생을 맞이할 수 있으려면 그래야만 했다.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뱉고 싶은 말을 뱉고, 사랑하고픈 것을 사랑하고. 웨이톄린은 뻔뻔하고도 기쁜 얼굴로 ‘다시’를 요구한다. 콴윙얀은 쉬이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않는다. 웨이톄린은 오래도록 방랑하면서 동시에 오래도록 정착하고 싶었다. 그러므로 웨이톄린은 콴윙얀을 정착지로 삼고 오래도록 방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은 지긋지긋한 홍콩을 떠났다. 그곳의 시끌벅적한 시장과 퀘퀘한 곰팡이 냄새 따위를 사랑한 동시에 지겨워진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 그들을 도로로 내몰았다. 이과수 폭포를 보러 가지 않을래요? 헐벗은 몸으로 누운 톄린이 윙얀의 귓가를 만지작거리며 속삭였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콴윙얀이 벗어난 과거의 냄새가 미미하게 흘러나왔다. 또 아편을 피웠습니까? 다정히 입술을 맞출 때가 언제였냐는 듯이 싸늘한 목소리가 흐르면 곧 답이 돌아온다. 이번 주는 피우지 않았어요.

 그 골방에는 양 벽면에 침대가 하나씩 붙어 있었다. 그럼에도 골방이 골방이라 불리는 데에는 모두 이유가 있는 법이라, 웨이톄린이 맨몸을 이끌어 반대쪽 침대에 가 누워도 팔을 뻗으면 콴윙얀의 손끝이 그의 어깨에 가 닿을 정도였다. 도대체 언제 끊을 생각입니까? 제 배에 얇은 이불을 대충 덮은 톄린이 어깨에 닿은 손가락을 치워낸다.

 “이과수 폭포가 보고 싶어요.”

 콴윙얀은 거절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싸구려 중고 차를 뽑은 웨이톄린의 옆에 앉아 지도를 펼쳐 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 애정은 언제나 사람을 유약하게, 혹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굴도록 만든다.

 며칠을 헤맸다. 오래도록 함께하는 것은 그토록 피곤한 일이다. 타인은 타인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으므로 영원할 몰이해와 지난한 합의는 서로를 지치게 만든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아르헨티나의 도로 위에 두 사람분의 담배 연기와 애정 따위가 흩뿌려졌다. 너무 먼 곳까지 나와서 그럴 것이다. 압도적인 경관을 보면, 눈앞이 아득해질 정도로 거대한 폭포 아래에서 서로에게 가장 아름다운 말을 꺼낸다면 다시 홍콩으로 돌아가 도로 위의 말다툼 따위는 종이에 잘 뱉어내어 하수구 안쪽으로 버려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실패가 성공을 안겨주듯이 절망이 희망을 몰고 오듯이, 기대는 언제고 실망에게 목줄을 채워 우리의 앞으로 질질 끌고 온다.

 길을 잃었다.

 웨이톄린은 절망하지 않았다. 절망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길었으므로 다시금 짧은 재회를 기약하기로 했다. 그는 모든 헤어짐을 똑똑히 기억한다. 갓길에 서서 오래도록 담배를 피웠다. 문득 바라본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콴윙얀의 피곤한 얼굴이 때마침 눈에 들어왔다. 그는 지쳐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윙얀이 자신과 함께 있으면 이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을 뿐이다. 차라리 멀리로 헤어졌다가 다시 시작하면 그는 도로 다정한 알렉스 콴이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 여기서 헤어질까요. 항상 이별을 속살거릴 때에는 그의 얼굴을 바로 쳐다보았는데, 이번만은 그럴 수 없었으므로 그가 평소와 같이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했는지, 놀란 표정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만나면 다시 시작해요. 우리는 오래도록 같이 있기에 적합하지 않으니까. 지갑과 옷가지를 챙겨 차에서 내린 웨이톄린은 한참 뒤에 제 옆을 지나가는 싸구려 중고 차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가 다시 걸었다. 언제든 자신을 반겨 줄 집에게 싸구려 자동차 정도를 넘겨주는 건 별일도 아니었으므로.

 잠깐은 바이아블랑카에서 지냈다. 그곳의 해군들은 동양인 남성을 폄하하거나 제 장난감으로 삼고 싶어했으므로 기꺼이 그렇게 하고 어울리다 지긋지긋해졌다. 그들이 제 몸을 만지건 말건, 제 약에 취하건 말건. 바다를 보며 떠올린 것은 폭포다. 바다가 땅끝에서 추락하면 그 또한 폭포이려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떠나겠노라 마음먹었다. 해군 하나의 차를 훔쳐 약 704km를 달려 도착한 곳은 라플라타였다. 오래 헤맸다 생각했건만 결국 다시 아르헨티나다.

 모로 가도 아르헨티나라면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자. 그리하여 웨이톄린은 그곳에서 즐길 것들을 모조리 즐겼다. 며칠 뒤에는 혼자서 이과수 폭포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 탱고바에서 콴윙얀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랬을 것이다. 술에 거나하게 취해 아무와 입을 맞추고 배를 맞댔다. 그건 방랑이었고 콴윙얀에게 입을 맞춘 것은 정착이었다.

 그가 화를 낸다.

 웨이톄린은 그토록 제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콴윙얀을 처음 보았다. 그는 가라면 가고 함께 있어 달라면 있어 주는 사람이었다. 통렬한 거부가 웨이톄린을 할퀴고 지나갔다. 왜? 외국에서도 자신은 변하지 않았는데 콴윙얀은 변했나? 의문이 속을 가득 채웠다. 타국의 땅을 오래 밟고 선 사람들이 변해가는 이야기를 떠올린다. 책에서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그들은 언제나 좋은 쪽으로 변한다.

 그러면 콴윙얀은 좋은 쪽으로 변했기에 웨이톄린을 부정하는가? 그 가정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숙이고 들어가야만 했다. 난 그냥 당신이랑 함께 있고 싶을 뿐이에요. 혀가 자꾸만 그를 원망한다.

 약을 사 가던 인간의 지인이란 사람이 찾아온 날엔 죽기 전까지 맞았다. 우리 다시 시작해요. 웨이톄린은 엄살이 심한 사람이므로 아마 죽기 직전이라는 말은 과장된 감상이겠지만 그 꼴을 본 콴윙얀은 결국 제 거처의 문을 열면서도 이전처럼 다시 시작하지 않는다. ‘다시’는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임에도 그는 웨이톄린을 가장 처음 사랑하던 때와 다르다. 콴윙얀이 오래도록 누워 있었을 싸구려 철제 침대 위에 올라 앉아 낯선 나라에서 제조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웨이톄린은 이 타국의 담배가 홍콩의 것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하며 불을 붙였다.

 그는 오래 일했다. 일찍 나가 늦게 들어왔다. 웨이톄린이 바라는 ‘함께’란 이런 것이 아니었다. 기억하고 있던 정착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였다. 웨이톄린이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싸구려 약을 빨거나 혹은 파는 것 따위였다. 웨이톄린은 가만 누워서 이과수 폭포가 그려진 스탠드에 시선을 던졌다. 그는 변했는데 저것만은 여전했다. 아니다, 자신 또한 여전하다. 바뀐 것은 그뿐이다.

 콴윙얀이 밤 늦게 여관 방에 돌아오면 웨이톄린은 소파 구석에서 자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런 밤이면 그는 가만히 그 앞에 웅크리고 앉아 웨이톄린의 붕대 감긴 손을 쳐다보곤 했다. 사실은 그가 그렇게 아프고 상처입고 병들었단 것이 좋았다. 웨이톄린이라는 남자가 콴윙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기묘한 쾌감과 만족감을 가져다 줬다. 손에 붕대를 감은 웨이톄린이 밥을 떠 먹여 달라며 투정을 부리거나 담배에 불을 붙여 달라 조를 때면 기분이 좋았다. 이건 비밀인데, 난 당신이 아주 영원히 아팠으면 하고 바랍니다……

 하루는 여관 방에 돌아왔을 때 웨이톄린이 없었다. 콴윙얀은 공황 상태에 빠져 그를 찾았다. 낡은 건물을 샅샅이 뒤지고 여관 주인과 실랑이를 할 때 즈음 저 멀리서 터덜터덜 걸어오는 마른 남자의 그림자가 보였다. 웨이톄린이었다. 콴윙얀은 헐레벌떡 달려가 그의 붕대 감긴 손을 잡았다. 눈물이 조금 났던 것 같기도 했다. 어딜 갔었냐는 질문에 웨이톄린은 담배를 사러 갔다고 했고 그 말에 콴윙얀은 불같이 화를 냈다. 내가 있는데 왜 멋대로 나간 거죠? 그리고 그는 그 길로 가게에 가 담배 다섯 보루를 사 와 소파에 웅크린 웨이톄린의 위에 쏟아 부었다. 다시는 멋대로 나가지 말아요. 웨이톄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 밤 콴윙얀은 웨이톄린의 여권을 훔쳤다. 그가 무언가를 훔쳐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훔친 여권은 여관 마루 틈새에 숨겼다. 낡은 마룻바닥은 이미 상처 투성이여서 나무 한 조각 쯤 들춰 냈다 다시 끼워 넣어도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이것이 잘못된 ‘함께’ 의 형태란 것은 그 역시 알고 있는 바였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어떠한 방식이 되었든 웨이톄린이 자신의 곁에 있어 주기만 하면 된다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램프 안의 파란 이과수 폭포를 보며 콴윙얀은 생각했다.

 여관의 좁은 주방에서 어느 날은 계란 볶음밥을 했고 어느 날은 서로를 끌어안고 탱고를 췄다. 붕대를 감은 웨이톄린의 손은 콴윙얀의 손을 온전히 그러쥘 수 없었으나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오히려 좋았다. 춤을 출 때 만큼은 이 순간이 영원할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결국 다시 헤어졌다. 이런 ‘함께’ 가 영원할 수 없다는 건 쌍방이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혼자가 된 콴윙얀은 일에 집중했다. 악착같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목표는 이과수 폭포에 들렀다 홍콩에 돌아가는 것이었다. 낮에는 식당에서 일을 했고 밤에는 도축장에서 일을 했다. 소의 배를 가르고 피를 씻어낼 때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 쪽이 편했다. 외로울 때면 웨이톄린을 떠올리는 대신 사내들이 모이는 공중 화장실을 찾아 아무나와 배를 맞대고 입술을 부볐다. 아르헨티나의 사내들은 대체로 키가 크고 억셌으며 체모와 피부색이 짙어서, 희고 마르고 예민하던 누군가와는 아주 달랐다. 그 점이 마음에 드는 동시에 가끔은 참을 수 없이 슬프기도 했다.

 목표한 돈을 거의 다 모았던 주말이었다. 콴윙얀은 언제나 들르던 공중 화장실에서 익숙한 인영을 발견했다. 그였다. 희고 마르고 예민한, 붕대 감긴 손으로 투정을 부리고 때로는 짜증을 내던 그 남자…… 두 사내의 시선이 교차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서로를 붙잡지 않았다. 붙잡을 수 없었다. 나는 우리가 아주 다르다고 생각해 왔는데, 사람이란 고독해지면 전부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 콴윙얀이 웨이톄린을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그는 몇 달을 모은 돈을 들고 이과수 폭포로 향했다. 이과수 폭포에 도착하니 웨이톄린의 생각이 났다. 슬펐다. 언제나 폭포 아래에 둘이 있는 장면만을 생각해 왔기 때문이었다. ‘진짜’ 이과수 폭포는 아주 거대했고 습한 냄새가 났다. 물방울이 튀어 홀로 선 사내의 건조한 뺨을 간지럽혔다. 울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울지 않았다. 대신 그는 폭포 근처를 지나가는 배의 갑판에 납작 엎드려 물소리를 들었다. 거대한 폭포의 소리는 꼭 사람이 흐느끼는 소리 같아서 그걸 듣고 있다 보면 조금 덜 외로운 것 같기도 했다.

 이과수 폭포에서 하루를 보낸 다음 콴윙얀은 홍콩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홍콩과 부에노스 아이레스. 정 반대에 위치한 두 도시. 거꾸로 보는 홍콩은 어떤 모습일까? 비행기의 창에 뺨을 기댄 채 그런 생각을 했다. 안녕, 부에노스 아이레스. 나를 이방인으로 만들던 도시여, 안녕.

 한 해 만에 돌아온 홍콩의 밤은 여전히 시끄러웠고 여전히 밝았다. 떠날 때는 둘이었으나 돌아올 때는 하나였다. 공항의 무빙 워크는 지나치게 길어서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여길 벗어나면 담배를 피워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콴윙얀은 여권을 손에 쥐고 홍콩 국제 공항의 로비를 가로질러 걸었다. 운이 좋다면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그는 깨닫는다. 웨이톄린에게 사랑한단 말을 해 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가 그 남자를 아주 사랑했단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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