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llen Angels>
- Moon River

- 2023년 9월 5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3년 9월 8일

Moon River
<Fallen Angels>
by Wong Kar-wai
Melodrama / Hong Kong / 1995 / 105min / 15+
3년이나 함께 일한 그녀를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만났다.
서로의 감정을 믿을 수 없어서 거리를 유지해 온 것이다.
좋은 팀은 서로에 대한 감정이 없어야 한다.
-타락천사 中
No.1 사샤
나는 고독이 두렵다.
그러나 누군가를 곁에 두는 건 더 두려운 일이다.
No.2 시
나는 고독을 모른다.
획이 많은 글자와는 친하지 않다.
일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누구나 마음에 드는 일만 하면서 살지는 않는다. 나도 그렇다.
내 일은 킬러가 의뢰받은 타깃의 정보를 캐오는 것이다. 살인은 무섭지만 내가 하는 건 어디까지나 사전 정보를 조사하는 데서 그친다. 살인은 그 사람의 몫. 나는 그에게 정보를 팔 뿐. 이렇게 생각하면 절대 못 할 일도 아니다. 이것 말고는 딱히 돈을 벌 방법도 없다. 서핑 대회 상금만 높았어도 곧 죽을 사람 집을 드나드는 대신 파도를 탔을 텐데. 정말이지 야박한 세상이다.
킬러를 돕는 일을 한다고 매번 뒷골목에서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면서 사는 건 아니다. 내게도 가족이 있다. 애초에 가족이 없었으면 이렇게까지 열심히 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대신 가족에게는 비밀이다. 낮에는 거리를 걸으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한다. 아침은 생략하고 조깅을 하는 게 매일의 루틴이다. 타깃의 행동반경에 따라 가야 하는 곳이 매번 달라지지만, 운 좋게 바다 근처가 걸리면 그때는 아침 바다를 보면서 달릴 수 있다. 이런 평범한 하루하루를 영위해나가고 있었는데, 요즘은 누군가에게 쫓기는 기분이 든다. 내가 조사한 사람은 이미 전부 다 죽었는데 말이다. 당신 누구야?
내가 하는 일은 간단하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수단을 가리지 않지만 원한다면 리퀘스트도 받는다. 물론 요구를 들어준다는 말이 반드시 그 말을 따르겠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사람을 죽이는 게 어렵지 않다. 나에게 의뢰를 하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가끔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나에게 의뢰를 하고 배신을 한다. 그 사람들은 전부 죽었다. 그때쯤엔 알게 됐겠지.
오늘도 호텔 객실에 들어와서 사람을 죽였다. 이 호텔의 엘리베이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CCTV가 어디에 달려있는지 같은 귀찮은 것들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내게는 협력자가 있다. 성가신 것들은 전부 그 남자가 도맡고 있다.
남자의 이름은 테디다. 나는 타깃의 심장에 칼을 박으면서 그가 이 객실을 어떤 순서로 훑었을지 상상한다. 발코니를 열고 바깥을 내다본 다음 창문을 닫았겠지? 침대 위에는 누워봤을까? 나는 시체 옆에 남은 빈자리에 몸을 구기고 누워보았다. 그는 나보다 키가 클 것이다. 몸을 펴고 누우려니 죽은 사람이 방해되었다. 나는 눈을 감고 죽은 시청자 대신 텔레비전의 동물 다큐멘터리 나레이션을 들었다.
「어떤 동물들은 살기 위해 서로 협력합니다. 서로가 이 관계에서 이익을 얻는 경우를 상리공생이라고 부릅니다.」
「흰동가리는 말미잘 촉수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뿐 아니라, 이곳을 포식자의 공격을 막아내는 보금자리로 삼습니다.」
「말미잘은 흰동가리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대가로 먹이 사냥에 도움을 받죠. 만만하게 보이는 흰동가리에게 따라붙은 포식자는 말미잘의 자포에 당하고 맙니다.」
「말미잘의 촉수에 있는 자포는….」
"상리공생."
마음에 드는 말이다. 그런데 말미잘은 왜 흰동가리를 잡아먹지 않는 걸까? 자신에게 도움이 돼서? 어떤 말미잘은 흰동가리를 먹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흰동가리는 말미잘의 독에 면역이 있다. 말미잘이 흰동가리를 죽이려고 하면 흰동가리는 유유히 헤엄쳐 떠나버릴 것이다.
"말미잘도 지느러미가 있으면 좋을 텐데."
나는 팔을 휘저었다. 유영하듯이. 나는 말미잘이다. 나에게는 다리가 있다.
C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와 만나겠다는 전화였다. 필요해? 얼굴을 보고 싶어요. 곤란한데~. 왜요?
C의 목소리는 낮고 투명하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나 아이처럼 말한다. 나는 사연 있는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채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슬슬 이 일을 그만두려고 해. 그러니까 왜요? 질려서. 더 어려운 일이 하고 싶었어요? 그런 건 아니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번 의뢰만 끝나면 일을 관둘 거야. 네게는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얼굴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
화내려나?
화내는 사람은 무섭다. 화를 내는 사람들은 불과 같이 주변의 모든 걸 태워버린다. 하지만 불이 붙는다는 건 땔감과 연료가 있다는 뜻이다. 그건 그렇게 나쁘지 않다. 수화기 너머의 C는 화내지 않았다. 그 사실이 크게 허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관계의 무게를 되새기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나는 약속 장소에 사서함 열쇠를 두고 일찍 떠났다.
I tried to telephone
They said you were not home
That's a lie
비틀즈의 No reply가 C에게 대답이 되어줄 것이다. 나에게 다른 연인이 생겼다고 착각해도 좋다. 이 일은 싫다. 범죄자도 싫다. C가 있어서 지금까지 이 일을 해올 수 있었지만, 155주면 충분히 오래 함께 지냈다. 얼굴과 이름을 모르는 건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3년을 보낼 수 있었고, 그런데도 3년이 무거울 뿐이다. 이제는 헤어질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최근 붙은 스토커를 C에게 부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제 와서 유도해봤자 C는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이건 차악의 가정이다.
"리니, 삼촌한테 인사해."
이런 나에게도 가족이 있다. 내 동생은 나와 똑같이 생겼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모든 일에 정면으로 맞서고 어디든 용감하게 달려가는 사람. 나는 아니다. 나는 모든 일에 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돌아가더라도 안전하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샛길로 빠져 뱅뱅 돌아도 좋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아왔다.
동생의 아이는 작고 예쁘다. 아기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손가락을 쥐어온다. 어른이든 아이든 타인은 사랑할 수 없다. 그 정도의 거리는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영역 같다. 넘을 수 없는 선처럼 모두가 밖에 있다. 하지만 가족을 사랑한다. 가족의 가족이라면 나에게도 가족이다. 나는 동생의 이름을 절반 딴 아기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아기가 방실방실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 그만두는 게 맞아. 나는 이곳에서 태어났다.
"요즘은 어떻게 지냈어?"
"일하느라 바빴지~ 직장이 날 가만 둬주질 않네."
"조사 업무라고 했었지? 고생하네."
"그래도 곧 관둘 거야. 그 준비 때문에 한동안은 바쁠 것 같아."
사실 바쁘지 않다. 그래도 포석을 깔아둬야 한다. 동생의 가족이 얽히는 건 바라지 않는다.
최근 들어 뒤를 밟히는 일이 늘었다. 몇 번 잡아보려고도 해봤지만 전부 실패했다. 이 위협이 내 가족에게까지 손을 뻗는다면 매우 큰일이 된다.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동안은 이 집에 오지 않을 것이다.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동생은 도와주겠다고 발 벗고 나설 게 분명하다. 내 특기는 거짓말이다. 하얀 거짓말은 양심의 모서리를 닳게 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 다음번에 만날 때에는 아기 앞에서도 떳떳할 수 있을 것이다.
쨍그랑!
"뭐지?"
"내가 가볼게."
나는 동생을 제지하고 밖으로 나섰다. 동생은 아내와 함께 우는 아기를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다. 단독 임무가 훨씬 마음이 놓인 나는 이 상황에 불안해하는 대신 안심하기를 우선했다. 애초에 오지 않고 전화로 말하는 게 나았을까.
창문 밑을 살피자, 어디서 굴러나온 건지 모를 도자기가 깨져 있었다. 그 옆으로 아이가 한 명 서있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나는 웃으면서 도자기 던지기 경주가 열렸냐고 물어보려고 했다. 그러기도 전에 아이는 내 옆의 벽을 짚었다. 작았다. 나는 아이의 소꿉장난에 어울려주는 심정으로 이 대화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럼 살려주세요, 저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요. 하고 비명을 질러야 할까?
"테디. 맞죠?"
아아…. 소꿉놀이는 시작도 전에 끝나버렸다.
"이거 계약 위반이야."
"저희가 어떤 계약을 했었는데요?"
"어떤 경우에도 서로의 일을 착실하게 돕고 상호보완할 것."
"그 조항의 어디에 얼굴을 보면 안 된다는 말이 적혀 있나요?"
"이건 일에 방해되지. 필요도 없고 의미도 없잖아."
3년이나 함께 일한 그를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만났다. 서로의 감정을 믿을 수 없어서 거리를 유지해온 것이다. 좋은 팀은 서로에 대한 감정이 없어야 한다.
C의 말대로, 구두로 나누었던 계약 조항 그 어디에도 얼굴을 맞대면 안 된다는 말은 없었다. 하지만 당연하잖아. 얼굴도 모르는 상태로 3년을 보낸 것만으로도 이렇게 네 생각을 하게 되는데, 얼굴까지 보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 방심했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다. 어차피 C는 유능한 킬러이니 구하려면 얼마든지 다른 협력자를 새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꼭 나일 필요는 없다.
"다시 정하면 되죠. 저와 교제해요."
"그렇게 쉽게… 으, 응?"
의사를 완전히 무시당한 나는 그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노래를 들었잖아. C는 아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키가 작았다. 커다란 눈망울은 순수해보이기까지 했다. C는 그 반짝이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노래가 어쨌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C는 이별 노래를 들려준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를 못한 거다.
"생각해봐, C. 우리는 서로의 이름조차 몰라."
"이름이라면 지금도 불러주고 있어요."
"무슨 말이야?"
"시. 그게 제 이름이예요."
"…시가 이름이야?"
무슨 이런 이름이 다 있어. 사샤는 시(C)가 당연히 코드네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는 처음부터 대놓고 이름을 까고 이 관계를 시작했던 거다. 혼란스럽다. 어디에 무게를 두고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어제 텔레비전에서 봤어요."
"뭐를?"
"암컷 사마귀는 짝짓기를 위해 접근하는 수컷의 60% 이상을 잡아먹는대요."
"그래? 무섭네~"
"마지막 의뢰를 받아준댔죠. 그럼 제가 의뢰할게요."
"어차피 죽이는 건 시면서. 시가 의뢰하는 거야?"
"네. 다음 타깃은 사샤예요."
"……."
"이제 저에게 사샤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세요."
죽고 싶지 않아. 도망칠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떻게든 거절할 방법을 모색하는데 옷깃이 확 당겨졌다. 입술에 말캉한 게 닿았다. 키스보다도 입막음에 가까웠다. 나는 우리의 거리가 그동안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던 걸까?
나는 소리 없이 그를 떼어놓느라 조금 고생했다. 토기가 올라왔다. 이대로 주저앉아 구역질이라도 할 것 같았지만 벽 너머에 동생의 가족이 있다는 생각에 억지로 참아냈다. 시는 여전히 내 팔을 잡고 있었다.
"거절하면 죽일게요."
그동안의 위협의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퇴로는 없었다. 나는 수긍이 빠른 편이다. 벗어날 수 없는 일에 발버둥쳐봤자 힘만 빠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도망칠 수 없다. 기쁘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놀랐다. 시도 내가 누웠던 침대에서 내 생각을 했을까?
"그래…."
내 대답에 만족한 듯, 다시 그의 입술이 내게로 다가왔다. 식은땀이 흘렀다. 사냥을 당하는 기분이다. 내 몸에 꽂힐 작살이 날아오는 걸 보면서도 피할 수 없다.
나는 눈을 감았다.
Then, she kiXXed him.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