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pe>
- Never Not

- 2023년 8월 26일
- 11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3년 9월 8일

Never Not
<NOPE>
by Jordan Peele
Mystery, Horror / UK / 2023 / 131min / 18+
0.
어느 날 비가 쏟아졌다. 아니, 우박이, 폭풍우가 쏟아졌다. 못과 나사로 만든 폭탄처럼.
1.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어느 아주 평화롭던 하루, 므네모시네 이시스 레테가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찻집에 틀어둔 라디오에서 경쾌한 브릿 팝이 흘러나오고-어쩌면 그중 한 곡 정도는 일라이가 기타를 연주했을지도 모르고- 바깥에서는 선선한 봄바람이 부는, 화창하고 별다를 것 없는 날이다. 아직 이 시대에는 수화기 너머의 사람을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므로 므네모시네는 수화기 윗부분을 귀에 가져다 대고서야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모네?”
어딘가 불안정한 목소리. 그것이 평소와 달랐고, 그것만이 그 순간에 이질성을 제공했다. 오늘은 어제와 같은 날이 아닐 것이었다. 지금 들리는 이 음악은 영원히 불길하게 기억될 것이며 오늘 마신 차는 몇 달 후에도 어딘지 조금 쓰게 느껴질 것이다…… 왜냐하면,
“내일 장례식이 있는데…….”
수화기 너머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일라이 루이 드레퓌스이며……
“와 줄래?”
그가 얕게 헐떡이고 있기 때문이다.
2.
“응, 당연하지. 그런데 무슨 일이야?”
3.
사건의 진짜 경위는 이렇다. 스코틀랜드 한구석에 볼 일이 있었던 코넬리아 루이 드레퓌스가 하늘에서 눈-아니 우박처럼 쏟아진 못에 머리를 찍혀 사망했다. 어찌나 정확한 관통이었는지 시신에는 딱 그만한 사이즈의 상처를 제외하곤 생채기 하나 없었다고 한다. 대신 피가 많이 있었다.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피. 포트 키를 이용해 가장 먼저 달려간 일라이의 묘사는 그래서 오래된 뉴스 기사 속 움직이지 않는 사진처럼 무미건조했다. 뇌는 간신히 피했는데, 그래서 끝까지 말은 할 수 있었는데, 피가 너무 많이 흘렀어. (여기서 므네모시네는 그의 표현이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가 아님에 주목한다. 세 발짝 떨어진 감각.) 그래서, 그러다가. 그렇게 됐네.
코니는 같이 요리도 하고, 찻집에도 왔었는데. 므네모시네가 말했다. 귓가에서 항상 끼고 다니는 귀걸이가 반짝여서 일라이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했다. 응, 그랬지. 재밌었는데.
당장 내일이라도 또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장례식이 끝나던 때엔, 인부들이 무덤에 흙을 채우는 동안 일라이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밥 딜런의 노래였다. 슬프기보단 들떠 보였고 그래서 다른 조문객들이 모두 울었다. 제각기의 속도와 높이로. 흐느끼고 오열하고 슬퍼하는 소리들. 마지막 코드를 치고 일라이가 피크를 쥔 손을 들고 소리쳤다.
“뭐야? 왜 이렇게 우울해들. 이제 해산! 원래 인생으로 돌아들 가.”
므네모시네와 눈이 마주쳤을 땐 웃기까지 했다. 이상했지만 동시에 달리 어찌할 수 있지 않기도 했다. 므네모시네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일라이가 바닥에 내려 둔 케이스 안에 기타를 던져 넣고 (우득, 나무 부러지는 소리.) 성큼성큼 다가와 말했다.
“뭘 좀 알아봐야겠어.”
도와줄래? 그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별반 다르지 않은 말이었다. 므네모시네가 거절할 수 있는 방법은 어차피 없었을 것이었다. 그야 일라이는 항상 이런 식이니까.
4.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마법 생물이 나타난 게 아니냐는 게 첫 가설이었다. 코니의 죽음이 있었던 지역 인근에서 드문드문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머글) 경찰에서는 영문을 몰랐고 아는 오러들은 전부 입에 본드라도 붙여 놓은 듯 굴었으므로 사실상 거의 유일한 가설이기도 했다. 코니는 ‘사실상’ 머글인데 말이지. 일라이가 말하고 므네모시네가 끄덕였다. 그러게.
다음 수순은 그래서, 당연히, 그 사건이 일어난 곳에서 프로테고를 철벽처럼 두르고 밤을 새는 일이었다. 몇 날이고 며칠이고. 또 다른 못이나 나사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질 때까지. 그런데 당최 어떤 종류의 마법 생물이 못과 나사, 열쇠 따위를 허공에서 땅으로 우악스럽게 뱉어낸단 말인가? 취향이 고약한 신종 용이라도 나타난 게 아니고서야…….
“진짜 용이면 어떡하지?” 조악하지만 제법 갖출 것을 다 갖춘 작은 텐트(확장 마법은 마법 세계가 이룩한 최고의 혁명 중 하나다!) 앞에 쪼그려 앉아 므네모시네가 말했다. 겉에 희미한 상처가 여럿 나 있는 캠핑용 컵 두 잔에 핫초콜릿을 타던 일라이가 마시멜로 하나를 입에 넣으면서 대답했다. “글쎄, 잡아 죽여야 되나? 용은 안 잡아 봐서 말이지.” “농담처럼 안 들려, 일라이…….” “농담 아닌데?” “그럼 걱정되기 시작하는데…….” “아하하. 너한테 잡으라고 안 할게.” “그 문제가 아니잖아…….”
곧이어 마시멜로 하나가 므네모시네의 입에 들어갔다. 무르고 퍼석하고 달콤한 맛. “이거 핫초콜릿에 넣으려고 가져온 거 아니야?” “아 참, 그랬지.”
그 뻔한 잠복이 성과를 이룬 건 7일째의 일이었다.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고 둘째 날에는 하늘이 바다처럼 보였다. 무른 땅에는 식물이 나고 아침에는 태양이 밤에는 달과 별이 떴다. 생선을 구워 먹는 동안 주변에서 새가 날았으며 그다음 날에는 들개와 길고양이가 텐트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렇게 일곱째 날이었다. 시시한 사건도 사고도 모두 쉬는 날.
툭, 투툭, 툭. 아니, 이건 너무 귀여운 묘사다. 퍽, 퍽. 땅에 듣도 보도 못한 쇠붙이가 떨어져 꽂히고 마법으로 둥글게 지어 만든 방어막 위로 살벌한 충돌음이 들렸다. 폭풍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거대하고 넓적한 그림자와 함께.
그것은 용도 불도 마법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림자였다.
게걸스러운 입이고 새까만 구멍이었다.
창조의 일이 완성되었으므로 모든 것을 삼키는 공동을 두리라.
어떤 성서에는 그렇게 쓰였을지도 모르지.
5.
므네모시네의 찻집과 일라이의 집, 그리고 텐트 사이를 잇는 간이 포트 키를 설치해 둔 덕에 ‘준비’를 위해 바쁘게 런던을 오가는 일은 재채기를 하는 것보다 더 쉬웠다. 거의 모든 단계에 시행착오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 다시 그 그림자가 나타났을 때 일라이가 들고 다니던 머글 카메라를 그 방향으로 들이대자 카메라가 필름째로 불타며 펑 터져버린 탓에 마법사 카메라 두 종류가 동원되었다. 특유의 넉살로 세 번이나 에누리를 했는데도 끔찍하게 비싼 것들이었다. 일라이는 파운드-갈레온의 환율에 대해 30분이나 불평했고 공연을 조금 더 자주 하기로 결심했다. 돈은 중요하구나. 새삼스럽지만 이런 사소한 복수에도 돈은 필요했다. 그것도 꽤 많이.
- 시험 삼아 끌고 왔던 오토바이가 볼품없이 망가져 버렸으므로(“아니, 이런 씨발. 이게 얼마 짜린데!” “일라이, 말.” “이런 젠장할.” “좀 나아졌네.”) 이제는 타고 다닐 일이 별로 없던 빗자루에서도 먼지를 털어내야 했다. “이거 대체 언제적 모델이야?” 므네모시네가 물었고 일라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대충 날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정말 날 수 있는 것 맞느냐고 묻고 싶은 얼굴로 므네모시네가 쳐다봤지만 일라이는 외면했다. 누군가를 외면하는 게 누군가를 바라보는 일보다 훨씬 쉬운 성정을 타고났다는 게 이럴 땐 아주 편했다.
- 텐트 주변에 프로테고를 주기적으로 걸어주는 일이 생각보다 번거로웠으므로 캠핑카 하나를 빌려 왔다. 캠핑카에 약간의 마법을 걸어서 하늘에서 쏟아지는 잡동사니들에 구멍이 나지 않게 만드는 일이 흐느적한 텐트를 강화하는 것보다는 쉬웠기 때문이었다. 물론 어떤 꼼꼼한 마법도 완벽하진 않아서, 아킬레스건 마냥 소소하게 상처가 생기는 곳은 생겼으나 두 사람에겐 레파로가 있으니 괜찮았다. (“이거도 레파로로 고쳐져?” “안 될 것 같은데…….” “이 차한테 본네트 구겨진 걸 잊어버리라고 오블리비아테 해 봐.” “일라이,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니.”)
말고도 이것저것 기타 등등. 일라이는 사이사이 불평이 늘었지만 대부분의 순간에는 평소의 유쾌함을 유지했다. 이 모든 일들을 벌이기 시작한 원인에 죽음이나 불행 따위가 있지 않다는 것처럼.
모든 준비가 마무리되던 날, 일라이는 자기 몫의 빗자루에 오래된 그리핀도르 넥타이 하나를 묶고 말했다. “준비 끝이네.”
“그건 왜 묶은 거야?”
“그냥, 간지나잖아.”
“괜히 거추장스럽진 않겠어?”
“물론이지. 내 비행 실력 못 믿어? 나 퀴디치도 했는데.”
“너무 믿을까 봐 그러지.”
“걱정 안 해도 돼.”
“걱정하는 것처럼 들려?”
“응.”
“……맞아……. 솔직히 조금 신경 쓰이네.”
“뭐가?”
“이거 말이야.” 이거, 이 모든 거. 므네모시네는 더 말하지 않았고 일라이는 빗자루의 갈라진 끄트머리를 올려다봤다. 시선을 조금 더 올리자 새까만 밤이 보였다. 구름 사이에서 웅웅 울리는 어떤 소리. 어둠 속에서 높이 나는 그림자. 빛 없이도 혼자 있는 그림자……
그리고 온통 뒤섞인 비명소리……
6.
“정신이 들어?”
“응.”
“오러 한 명이 다녀갔어. 이 근처에 있던 마을에 있던 사람들 20명이 한꺼번에 사라졌대. 아는 게 있냐고…….”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모른다고 했어.”
“잘했어.”
“잘했어?”
“응.”
“일라이.”
“모네.” (그가 손을 내민다. 이건, 솔직하게 말하자면, 비겁한 제스처다. 므네모시네에겐 그 손을 잡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래 왔으니까.) “잊어버리지 마.”
뭘? 므네모시네는 그렇게 묻지만 곧 대답을 기대하지 않게 된다. 뻔하잖아. 그날의 전화 통화. 약간 쓴 찻잎. 조금 울적하게 들리는 라디오의 음악 소리. 비, 우박, 폭풍우처럼 쏟아지는 피.
7.
“길들일 수 있어.”
“다음엔?”
“죽여야지.”
“어떻게?”
“어떤 식으로든.”
8.
비, 우박, 폭풍우. 진짜로 비가 왔고 정말로 피가 섞여 쏟아졌다. 사라졌다는 스무 명의 행방을 이런 성서적으로 끔찍한 비주얼로 알게 되다니. 이제 어딘가에서 귀뚜라미와 여치 떼가 나타나고 이 근방의 모든 장자들이 죽게 되면 딱이겠군. 고약한 농담을 주워섬기던 일라이가 빗자루를 타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괜찮겠어?!” 지팡이를 든 므네모시네가 소리쳤다…… 돌아올 대답은 눈먼 낙관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당연하지!”
“아니라는 대답은 모르는 거야?”
“모르고 말고!”
동굴처럼 울리는 짐승의 소리……
“일라이!”
“왜!”
점점 멀어져서 들리지 않게 되는 다정한 목소리,
“끝나면 우리 가게부터 가자!”
재해처럼 불기 시작한 바람…….
“뭐 하러?!”
분명 내일도 그럴 수 있을 것처럼, 당연하단 것처럼 살아 있었는데.
“네가 그랬잖아, 아이스크림!”
지금 네가 그런 것처럼.
“야, 뭐 떨어지기 시작했어!”
그런데,
“알아, 그거 먹으러 가자!”
네가 그렇지 않게 되면 나는 어떡하지…….
9.
“그래, 이런 미친, 모네, 사진 찍어!”
10.
그런 건 정말이지 처음 봤어.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고 그래서 당연하다는 듯이 아침이 왔다. 막 현상되기 시작한 사진 한 장을 허공에 대고 힘없이 흔들던 일라이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머리가 온통 부스스하게 산발이 된 므네모시네가 누워 있었다. 여기저기 긁히고 다치고 약간 끈적해지기까지 한 자신 곁에, 당연히 여기 있기로 했다는 것처럼. 그렇게 보면 네 꼴이 훨씬 나아서 다행이지. 듣는 사람도 없는데 소리죽여 낄낄대면서 일라이가 말했다. “저거 안쪽 말이야. 진짜 좆같더라. 바로 봄바르다 안 썼으면 나 통째로 녹아버렸을지도…… 끈적끈적 슬라임처럼…….”
“일라이, 말.”
“저거 안쪽 말이야, 진짜 끔찍했어. 뒷말은 생략.”
“좀 나아졌어.”
“좀?”
“응, 좀.”
“아하하. 녹은 아이스크림 같기도 해.”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이렇게 묘사하기야?”
“나 사회성이 심각한가?”
“응, 약간.”
“약간.”
“응.”
“그럼…….”
일라이가 손을 내밀었다. 이건 조금 비겁한 짓이었는데, 므네모시네는 한 번도(정직하게 말하자면, 서로 지팡이 끝의 반대편에 서 있던 시절을 제외하고) 그렇게 내민 손을 거절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어릴 때 코넬리아가 그를 위해 세상의 모든 마음과 현상들을 설명해주던 것과도 비슷한 일이었다. 다정하고 한결같고, 조금은 슬픈 것. 이런 걸 보통의 마음이라고 하는 거지. 아닌가. 맞나. 아리송한 일이었다. 아마도 평생 그럴 테지.
“무슨 맛이 좋아? 내가 살게.”
이 다음에 뭔가 한마디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코넬리아가 아직 있었다면 아마 이렇게 말해주었을 것이었다. 이럴 땐 같이 와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야. 모든 걸 제치고 너를 생각해 준 거잖아. 하지만 코니는 이제 땅 밑 6피트 아래에 있고, 므네모시네와 자신은 잔뜩 엉망이 된 들판 위에 누워서 반파된 캠핑카의 잔해를 바라보고 있는 참이었다. 현명한 조언 같은 걸 상상하고 있을 여력은 없었다. 이제 조금 시간이 흐르고 나면 마법부에서 달려 나온 과로사 직전의 오러들이 사건의 경위를 꼬치꼬치 캐물을 테고, 두 사람은 이제 막 현상이 끝나기 시작한 사진 한 장을 함께 내밀게 될 것이었다…….
11.
“궁금한 게 있는데.”
“응, 일라이.”
“대충 이럴 때 울면 되나?”
“맞아.”
“어느 정도?”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그건 너무 추상적이잖아.”
“원래 그런 거야.”
“번거롭네.”
“응, 이제부터 시작할까?”
“저쪽 보고 있어 봐.”
“응.”
0.
어느 날 비가 쏟아졌다고 했다. 못과 나사가 내리는 비가 말이다.
1.
아주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호그와트에 다닐 때만 해도 딱히 이런 취향은 없었던 거 같은데. 같은 생각을 하며 흘러나오는 브릿 팝을 듣는 일상. 턱을 괴고 작게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꽤 경쾌하다. 사람이 많이 오지 않는 찻집은 꽤나 한가로웠고, 주인에게 차를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주었으므로 므네모시네는 가장 익숙한 티백 하나를 꺼내들었다. 단델리온 사의 넥타르, 익숙하게 따뜻한 물로 티백을 우려내고 있으면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 연락할 사람이 있던가? 수화기를 귓가에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그리고 나오는 익숙한 목소리. ……모네? 제 이름을 부르는 어딘가 불안정한 음성.
2.
평화가 깨지는 데 필요한 시간은 길지 않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일라이 루이 드레퓌스의 얕게 헐떡이는 목소리에 므네모시네 이시스 레테는 제가 앞으로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임을 직감했다.
“내일 장례식이 있는데…… 와 줄래?”
누구의? 같은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므네모시네가 곧장 내뱉은 건 긍정의 말이었다. 그 뒤에는 자연스럽게 질문을 내뱉긴 했지만. 무슨 말이냐는 므네모시네의 질문에 일라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코니의 장례식이야.”
3.
상황을 정리하는 것부터 해보자. 첫 번째, 스코틀랜드 한구석의 하늘에서 우박처럼 못과 나사가 쏟아져 내렸다. 아무런 전조증상 없이. 두 번째, 코니는 평범한 머글이었으므로 그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세 번째, 그렇기 때문에 쏟아져내리는 못에 머리가 찍혀 사망했다. 네 번째, 즉사는 아니었어. 다섯 번째, 못 말이야. 딱 그만한 사이즈의 상처만 있었거든. 생채기조차 없더라. 여섯 번째, 뇌는 간신히 피했는데, 그래서 말은 끝까지 할 수 있었는데…… 일곱 번째, 피가 너무 많이 흘렀어. 여덟 번째,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가 아니라? 아홉 번째, 그래. 피가 너무 많이 흘렀어. 열 번째……. 그렇게 설명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설명을 들으며, 므네모시네는 무미건조한 일라이의 반응에 몇 차례 괜찮냐는 질문을 건넸다. 일라이가 할 대답은 하나뿐이었지만, 그럼에도.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안 믿겨져.”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요리도 하고, 찻집에도 왔었잖아.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일라이는 그렇게 답했다. 응 그랬었지, 재밌었는데.
"당장 내일이라도 또 그럴 수 있을 거 같지."
므네모시네는 부정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부정하지 못했다.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코니의 웃는 얼굴이 선명했다. 다음에 또 보자고 했는데. 코니가 다음에는 다른 곳에서 만나자고 했었단 말이야. 그런데, 그런데……그게 이런 식은 아니었을 거야. 보고 싶다. 그러게.
4.
정확한 대답이었던가? 므네모시네는 확신하지 못한다.
5.
장례식이 끝날 즈음에는 일라이는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불렀다. 그의 노래에 조문객들은 눈물을 흘렸다. 들뜬 기타 연주와는 어울리지 않는 제각기 다른 울음소리. 완벽한 불협화음이다. 눈앞에 놓인 상황에 제목을 붙이자면 뜻하지 않은 이별의 슬픔 정도가 되겠지. 이 곡의 지휘자이자 연주자인 일라이는 곡이 끝나자마자 외쳤다. 이제 그만 해산하고 원래 인생으로 돌아가라고. 어느 누군가는 그 말에 그게 그렇게 쉽냐는 말을 삼켰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눈이 마주치면 일라이는 웃었다. 괜찮아? 입모양으로 뻐끔거리며 물어보면…… 일라이는 대답 대신 다른 말을 건넸다. “모네” 바닥에 놓인 케이스에 대충 던져놓은 기타에서는 곧장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게 기타였는지 다른 거였는지는 아직도 모를 일이다.
“뭘 좀 알아봐야겠어.”
“어떤 걸?”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아서 도와주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하기에는 알고 지낸 시간이 길었으며, 므네모시네가 받은 것들이 많았다.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므네모시네는 도와주기를 택했다. 언제나처럼 말이다.
6.
코니가 죽었던 장소, 그 근방의 지역에서 사람들이 사라지는 일이 드문드문 있는 모양이야. 소문이 돌고 있는 걸 보면 말이야. 경찰들은 처음 듣는다는 반응이던데, 오러들은 그냥 말 자체를 안 하더라. 아무래도 수상하지? 수상하네. 당연하게도 두 사람의 최선은 오러에게서 사건의 진상에 대한 이야기를 얻어내는 것이었겠지만, 입을 다문 오러에게서 답을 얻어내는 일은 일라이에게도 므네모시네에게도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평소라면 일라이는 쉽게 답을 얻어냈을 테지만. 상황이 상황이었으므로─, 두 사람이 차선으로 택한 건 아주 단순한 일이었다.
“프로테고.”
“프로테고….”
범인은 범행 장소에 다시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만약 마법 생물이라면 다시 이 장소에 나타나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못이나 나사 같은 것이라도 있을 거야. 사건 장소와 아주 근접한 지점에 확장 마법이 걸린 텐트를 두었다. 그리고 그 위에 몇 겹으로 두른 프로테고는 과장하자면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져도 견딜 수 있을 것처럼 견고해 보였다. 아마도.
첫째 날, 당연하게도 소득이 없었다. 둘째 날도 마찬가지. 셋째 날, 못이나 나사 같은 걸 뱉을만한 마법 생물이 뭐가 있지? 넷째 날, 용? 너무 터무니없지 않아? 다섯째 날, 그나마 가능성이 높긴 해. 말하면서 먹었던 퍼석한 단맛이 꽤 기억에 남는다. 여섯째 날, 밤샘을 그 정도 하니 슬슬 피곤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어, 그런 말을 하려던 일곱 번째 날. 진실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처음에는 가벼운 소리였다. 툭, 무언가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소리. 텐트 안에 머물던 두 사람이 의아함을 표현하기도 전에 소리가 커졌다. 퍽, 하고. 땅바닥에 살벌하게 박히는 소리와, 덧칠해놓았던 방어막과 맞부딪히며 나는 파열음 같은 것들. 떨어지는 걸 확인하니 못이나 나사 같은 쇠붙이들이었다. 아무래도 범인이 찾아온 모양이다. 두 사람은 텐트 밖을 나왔다. 그런 두 사람이 확인한 것은…… 그림자였다. 있잖아, 나는 사실 용일 거라고 생각했어. 용이라면 잡을 방법을 하나쯤은 있을 테니까. 그런데…… 저건, 무슨 방법이 있어? 거대한 그림자가 그 크기만큼이나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여전히 그림자는 무언가를 내뱉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살벌한 소리가 꽤 무섭게 이어졌다.
7.
“그래도 다행인 건 저게 뭔지 알아냈다는 거지.”
“……다행인 거 맞아?”
“적어도 용은 아니잖아. 다행이지?”
므네모시네는 할 말이 많았지만 입을 닫는 길을 택했다. 준비를 하려면 시간이 모자랐으므로. 여기서 정말 다행처럼 느껴지는 게 하나 있었다면, 두 사람이 마법을 사용할 줄 안다는 점이었다. 포트 키 덕분에 시간을 얼마나 단축할 수 있었는지! 텐트에서 곧바로 런던에 위치한 제 찻집으로, 그리고 그 근방에 있는 가게로 준비물들을 사러가는 일을 반복하던 므네모시네는 포트 키가 정말 편리한 마법이라는 걸 다섯 번쯤 생각하고 나서야 그렇게 생각하는 걸 그만둘 수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의도치 않게 포트 키를 너무 많이 이용해서 질렸기 때문이다. 망가진 카메라의 잔해를 치우면서 므네모시네는 이 일이 끝나면 푹 쉬어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일라이가 마법사 카메라를 끝내주게 흥정할 즈음에는 다른 생각 다 접어두고 저걸 어떻게 해내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이후 30분 동안 파운드와 갈레온의 환율에 대한 불평을 털어놓을 때는…… 이실직고하자면 제대로 안 들었다.
망가진 오토바이 대신 빗자루를 택했을 즈음에는 솔직히 말하자면 걱정이 가장 먼저 들었다. 최신 기종에서는 한참 멀어진 기종, 빗자루는 너도 오랜만일 거잖아. 제대로 날 수 있는 거 맞아? 걱정하는 게 분명하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제 시선을 외면하는 일라이를 보며 므네모시네는 생각했다. 이번 일이 끝나면 꼭 절교해야지.
빌려온 캠핑카는 텐트보다는 쾌적해 보였다. 하늘에서 후두둑, 떨어지는 못과 나사가 이번에도 살벌한 소리를 냈다. “여기엔 확장 마법 안 걸려있는데?” 일라이는 폭풍우가 끝난 이후 캠핑카에 난 흠집을 살폈다. “심적으로 쾌적해 보여. 조금 더 안전해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그렇잖아.” 흠집이 난 캠핑카를 레파로로 수리하면서 므네모시네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 준비를 하면서 포트 키를 몇십 번─과장이 아니다─을 사용했으니 질릴만했다. 잡다한 물건들은 여분이 필요할까 싶어 두세 개씩 준비하기를 한창. 이 정도면 준비가 끝날 거 같다는 생각이 들 무렵에 일라이는 제 빗자루에 그리핀도르 넥타이를 묶었다. 가벼운 대화. 빗자루의 갈라진 끄트머리. 꼭 전장에 나가던 시기의 그 느낌이다. 손끝이 차게 식는 느낌에 주먹을 쥐었다 피고 있으면 들려오는 게 있다. ……소음? “모네.” 그 음성에 고개를 들면 하늘에 자리한 건 어둠이다. 하늘을 덮은 구름에서 나는 소리,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한 그림자, 그리고 비명소리…. 이제 와서 말하는 건데, 나는 그 전장보다 끔찍한 순간이 있을 거라 생각한 적 없어. 너도 그렇지?
8.
정신을 차렸을 때는 캠핑카 밖에 누워있었다. 엉망이 된 머리를 수습하고 옆에 누워있는 일라이에게 담요를 하나 덮어주고 있으면 누군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새삼스럽게 말할 게 있다면 므네모시네의 전 직장은 마법 부였다. 마법부 소속 망각 술사로 활동하다 아무튼 많은 과정 끝에 나와서 찻집 주인을 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므네모시네가 마법부 소속 오러들의 얼굴을 꽤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또한, 그들 역시 므네모시네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는 것도.
“어? 므네모시네 씨.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나요?”
“아……네. 그럭저럭. 그나저나 무슨 일이세요?”
“아~ 다름이 아니라, 어제 이 근처에 있던 마을에서 사람 20명이 갑자기 사라졌거든요. 그래서 조사 나왔어요.” 여기서 므네모시네는 이 사람 이렇게 다 말해줘도 괜찮은 건가? 하고 생각했다
“…어제 그런 일이 있었다고요?”
“네, 그래서 비상이에요. 아휴,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이후 30분간 그는 자신의 근황을 설명했다. 므네모시네는 최선을 다해 듣는 시늉을 했다.) 므네모시네 씨는 뭐 알고 계신 거 없으세요?”
“네…, 저는 친구랑 (저분이요? ……네.) 캠핑 왔는데 휘말린 거라서요.”
“아하!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혹시 이상한 거 발견하면 연락 주세요!”
그 이후에는 일라이가 아는 것처럼 전개된다. 정신을 차린 일라이에게 전해지는 가벼운 상황 설명. 내밀어진 손. 그리고 잊어버리지 말라는 이야기. 뭘? 그렇게 물으면서도 대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잊겠어.
9.
“어떻게?”
“어떤 식으로든.”
“자신 있어?”
“당연하지.”
여기서 므네모시네가 할 수 있는 반응은 한 가지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래. 한마디 내뱉고 만다.
10.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피가 섞인 비 말이다. 세계가 멸망한다면 꼭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일라이가 빗자루를 타고 오르는 걸 바라보던 므네모시네는 지팡이를 조금 더 힘주어 잡았다.
“괜찮겠어?”
“당연하지!”
므네모시네는 뭐가 괜찮아! 같은 소리를 내뱉으려던 결 겨우 참았다. 일라이는 속도를 높여 하늘로 올라갔다. 사람이라기보다는 형태에 가까워졌을 무렵, 므네모시네는 외쳤다. "끝나면 우리 가게부터 가자."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뭐 하러?" "네가 그랬잖아, 아이스크림!" 그러니까, 우리에겐 내일이 있을 거야. 아주 당연한 내일 말이야.
“프로테고!” 질릴 대로 외운 방어 마법을 연달아 외친 이후에 반대편 손에는 카메라를 들었다. 셔터찬스는 딱 한 번이다. 그 기회를 놓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까. 심호흡을 하고 진정하고, 차분하게. 사진 찍어! 일라이의 외침에 므네모시네는 플래시를 터트렸다. 찰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찾아온 것은… 그 소리를 덮는 아주 큰 폭발음. 아주 커다란 형태의 화염. 성공이었다.
11.
성공했네. 이제 막 현상되기 시작한, 일라이가 힘없이 흔드는 사진을 바라보던 므네모시네는 말했다. 그렇지. 이리저리 엉망이 된 모습에도 낄낄거리며 네 꼴이 훨씬 나아서 괜찮다는 말을 중얼거리던 일라이에게 웃음이 나와? 병원 갈 생각부터 해. 그런 잔소리를 했다. 언어 좀 곱게 사용하라고,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묘사에 이러기냐고 타박을 하기도 하고, 그러고 있으면 내밀어진 손이 있다.
“무슨 맛이 좋아? 내가 살게.”
지난 시간 동안, 므네모시네는 일라이가 내민 손을 거절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때도 결국엔 일라이의 손을 잡기를 택했다. 그래서 지금 그가 찻집을 운영하고 있는 거니까. 코니와 레테도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으므로. 그러니까, 당연하게도. 므네모시네는 이번에도 일라이의 손을 잡았다.
“바닐라 맛이 좋을 것 같아.”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그나저나, 일라이. 이 캠핑카 어쩌려고? 반파됐잖아.”
“레파로로 안 고쳐져?”
“이 정도는 안 될 거 같은데…….”
“모네, 이번에야말로 반파된 걸 잊어버리라고 오블리비아테 해 봐.”
“그걸 진짜 말이라고 하는 거니.”
12.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부에서 달려 나온 익숙한 오러들이 상황을 캐물었다. “므네모시네 씨, 모른다고 하셨잖아요!” 이름 모를 이의 배신당한 얼굴을 므네모시네는 외면했다. “그렇게 됐어요.” 현상이 끝난 사진 한 장을 내밀고, 상황을 설명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덧 정오다. 친절하지 않은 마법부 직원들은 본인들이 더 확인해 보겠다며 자리를 옮겼고, 남은 건 므네모시네와 일라이 둘뿐이었다. 혹시 몰라 제미니오로 복사해둔 사진을 하나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캠핑카는 마법부에서 어떻게든 해주겠다니 다행이지.” “그러게 말이야.” “우리가 할 일은 끝났으니까, 이제……”
13.
“돌아갈까?”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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